수호천사 루이와 인간 에단AU

이 글은 픽션이며 실재하는 종교와 어떤 관련도 없습니다.

 

천사의 딜레마 1[링크]


 

해가 떠오를 때 루이도 잠시 하늘로 날아올라 여덟 날개를 쭉 펼쳤다. 통과할 수 있다곤 해도 밀도 있는 벽이나 땅과 ‘겹치게’ 되면 답답하기 때문이다. 에단은 여전히 잠들어 있다. 이런 누추한 곳에서 잘도 자는군. 루이는 본인이 재워 두고도 태평한 생각을 했다. 천사처럼 잔다는 묘사는 영 틀렸다. 천사는 잠들지 않기 때문이다.

에단은 침대가 좁은 탓에 팔다리를 구겨 두고 몸을 보호하듯 감싸 안고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이 어깨를 살짝 덮고 흘러내렸다. 루이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가 천천히 깨어나는 모양을 지켜보았다. 에단은 느릿느릿 눈꺼풀을 들어올리고, …자신이 어디 있는지 이해하려는 것처럼 벽면을 한참 응시했다. 그러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루이는 그가 다시 잠에 들려는가 생각하는데, 인간은 곧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가 천사를 발견하는 건 쉬웠다. 그저 방 어디든 시선을 돌리기만 하면 되었다. 루이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한 손을 들었다. 평안한가?

“……….” 인간은 루이 앞에서 고개를 돌려 버린다. 그의 존재를 잠시 부정해 봤자 보지 않을 수도 없건만, 루이는 참을성을 가져 보았다. 그대가 있으라 해서 있었네.

“그랬군요.”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아 있다. 루이는 유쾌하게 답했다. 그대를 깨우거나 아침인사를 할까 했지만, 공연히 놀라게 할 것 같았지. 에단은 비로소 다시 그의 수호천사를 마주 바라본다. 좋은 아침입니다. 다소 늦은데다 어딘지 이상한 인사였지만 루이는 미욱한 인간을 굽어살피는 웃음으로 답했다. 좋은 아침, 귀염둥이. 에단은 천사가 자신을 무어라 부르던 아랑곳 않고 머리를 한데 질끈 묶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철문 밖에 사람이 들이닥쳤다. 루이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으므로 경계할 필요는 없었으나 에단과 다른 인간들 사이에 비스듬히 섰다. 에단에게 시선을 주자 미약하게 고개를 저을 뿐이다.

“따라와라.” 그들은 식사도 주지 않은 채 에단의 양 팔을 붙들고 감방 밖으로 끌어냈다. 루이도 놓칠세라 그들을 좇았다. 큰 위기는 아닌 듯했지만……. 가만, 이대로 사형이라도 당하는 건 아니겠지? 루이는 묵묵히 끌려가는 에단의 뒤통수를 본다. 가만 보면 선한 인간들은 이런 시대에서 일찍 살해당하는 경향이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이 인간을 좀 들여다볼 걸 그랬다. 루이에게는 아마도 에단의 ‘신분’이 높다는 것, (그의 언행으로 짐작 가능하다) 그들이 모두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 그리고 인간을 대강 큰 줄기로 분류하면 생김새도 대략 비슷하다는 것 외에는 알아낼 수 있는 맥락이 없었다. 하지만 루이가 굳이 그런 수고를 들이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오기 전에 그는 생각했다. 더러운 소굴에서 살아남은 보석 같은 인간, 본래의 삶이 순탄할 리가 없다. 그는 루이의 강림을 전후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것임이 자명했다. 작은 인간이 아등바등 염려하던 일들, 붙잡고 싶었던 것들, 후회하는 행동, 그 모든 건 루이의 가호 아래 사라지고 빛을 잃을 터였다……. 인간은 멋진 삶을 살아야 했다. 이는 물질적인 이야기만은 아니지만, 한 인간이 만족할 수 있는 최대치의 황금 또한 포함된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대해 말할 수도 있지만, ‘경건한 인간’이라 증명된 자들의 소유욕에는 한계가 있음이 이미 천계에서 여러 차례 증명된 바 있다.)

그런데 에단은 루이를 곁에 두고도 여전히 감옥에 있고 이제는 끌려가고 있었다. 루이는, 스스로 전혀 잘못한 바가 없는데도 일을 그르친 적이 처음이었다. 물론 예전의 ‘우발 사건’ 이후로 말이다.

 

 

곧 책상물림으로 보이는 자가 나타났다. 그는 에단을 짧게 흘긋거리고 말했다. “에단 아스터 버틀러, 귀족 살해 혐의로 체포된 것이 맞는가?”

“그렇다.” 에단은 한 발 나서며 위협적으로 대꾸했다. 루이는 그 위세에 상대가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았다. 재…재판이 곧 열릴 것이다. 그러나 죄질이 중하기 때문에 신의 자비가 있다면 겨우 목숨을 부지하겠지.

그런 중죄였다고? 루이는 진짜 그가 했냐는 눈빛을 보내 보았지만 에단은 루이를 보지 못하는 양 무시했다. 세상에 이런 취급을 받는 일도 처음이었지만, 루이에게는 기껏 강림했더니 인간이 교수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충격이 더 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왜 갇혔는지 정도는 미리 물어볼 걸 그랬다. 이보게, 인간. 나에게 말 좀 해 보게. 루이는 이유 없이 아주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이 몸에게 말 한 마디만 하게. 어떻게든 해 볼 테니. 에단은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루이의 존재감이란 이제 성화 배경에서 코러스를 연주하는 견습천사 정도로 쪼그라든 느낌이었다.

“나는 윈프레드 기사단 소속이다.”

에단이 무서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심문관은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아래턱을 치켜 올렸다. 근엄한 인상을 주려는 모양이었는데 정작은 진지한 오리처럼 되었다. (루이는 오리가 좋았다.) “네 기사라는 신분이 재판에서 득이 될 거란 생각은 않는 게 좋다. 오히려 목숨을 건 서약을 어기고 중죄를 저지른 값을 무겁게 치르겠지.”

“윈프레드 기사단은 국가가 아닌 교황청에서 파견된 기사단이다. 추기경께서 신분 보장을 맡고 계신다.”

그 말에 에단 근처에 있는 이들 사이로 제각기 시선이 오갔다. “너희 나라로 송환은 불가하다. 귀한 분을 살해했으니 우리 법으로 처벌한다.”

“교황청에서 신분을 보장받은 적법한 기사를 성직자의 참관 없이 재판에 보내는 일은 장차 분쟁의 소지가 있지 않은가?” 에단은 팔을 구속한 이들을 되레 협박하듯 으르렁댔다. “내 신분을 증명하는 패가 소지품 중에 있을 것이다. 확인해 봐도 좋다.”

루이는 팔짱을 끼고 이들의 머리 꼭대기에 섰다. 대천사가 보기에 에단의 말이 허풍은 아니었다. 말의 진실을 판가름할 능력이 없는 인간들은 죄수의 주장이 헛소리인지 아니면 근거 있는 말인지 판단할 시간이 필요했다. 간수들은 심문관을 일제히 쳐다본다. 그가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확인해 보지. 거짓이라면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상대가 마침내 입을 떼었다.

 

 

 

 ♣

 

 

그들은 재판장에 서는 대신 작은 배에 실리게 되었다. 정확히는 에단만 그랬다. 노를 젓는 사공과 에단은 긴 수갑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대가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네!” 이 몸을 만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목이 떨어진다면 슬펐을 테지. 생각이 있어 다행이군. 루이는 종알댔다. 몸은 좀 편한가? 이대로 이이를 따라갈 생각인가?

에단은 드디어 루이를 제대로 바라보았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루이는 흔들리는 배 끄트머리에 떴다. “아직 알아채지 못했다면, 그대의 동행은 귀가 들리지 않네. 허공에 헛소리를 지껄이는 게 부담된다면 말이야.” 묵묵히 노를 젓는 사공을 에단이 돌아본다.

 

“…이대로 강을 건너고 나면 재판이 다시 열릴 때까지 임시 거처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저의 신분으로 인해 다시 감옥에 넣을 순 없을 테니, 구색을 맞춘 막사나 비슷한 곳이겠지요.”

“재미있군.” 에단이 기묘한 표정을 해 보였다. “본래 무지의 안개를 걷어 밝히는 일은 우리의 몫인데 말일세. 그대가 이 몸에게 설명하려 드는 일이 신선해.”

“주제넘었습니까.”

“아아니, 무사해서 다행일세.” 루이는 밝게 웃었다. 지금이라도 좋아. 그대가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긴 했지만 살인죄로는 재판을 피하긴 어려울진대. 헤엄을 칠 줄 안다면 배를 뒤집고, 그렇지 못해도 저기, 드러난 땅에 내려줄 수는 있네. 루이는 흘끗 보이는 나지막한 섬을 가리켰다. 에단은 고개를 저었다. 참 어려운 인간이다.

“정말 그대가 한 일인가?” 루이는 문득 묻는다. 에단은 말이 없다. 높게 뜬 태양이 강 위로 어른거리는 빛무리를 만들었다. 질문이 없었던 것처럼 잊혀질 때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인자라. 루이는 여기저기 상처가 가득한 에단의 손을 본다. 그럴 수 있지. 그러나 사랑의 대천사로서 잠시간 가슴이 아파오는 것은 떨칠 수 없다. 인간의 무게를 재는 데 이력이 난 이들이야 아무렇지 않아 했을 것이다. 신조차 그렇다. 에단은 천사에게 죄를 고백한 후에도 그다지 참회하는 기색 없이 (그는 거의 아무 것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뱃머리로 고개를 돌렸다. 물살은 점점 노랗고 탁한 빛으로 변하고 있다. 도착이 가까웠다.

 

 

 

 

 

나무로 지어진 임시 거처는 꽤 그럴싸한 집의 꼴을 갖추고 있었다. 침대와 서재, 넓은 다락이 있는 집이었다. 그냥 아무 빈 집을 임의로 쓰게 해 준 것 같기도 했다. (이 정도면 가벼운 ‘행운’ 이상이 아닌가? 이 몸의 솜씨는 과연 예술이군. 루이는 생각한다. 호응해주는 이가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테다.) 병사 두 명이 각각 집 밖과 안에 배치되어 교대 근무를 서게 되었지만 느슨한 편이었다. 그들을 통해 필요하다면 편지를 쓰거나 제한된 면회를 받을 수 있다는 공지가 내려왔다. 에단은 한 가지, 소지품을 돌려받을 수 있겠냐고 질문했으나 단칼에 거절당했다. 집 밖으로 나가는 일 또한 금지되었다. 다시 감금 생활이었다.

 

루이는 느릿느릿 침대로 향하는 에단을 눈으로 좇았다. 지키는 병사는 바깥에 있지만 달리 도망칠 데도 없었다. 감금이란 인간의 행복을 중대하게 망치는 요소 중 하나였다. (뼛속까지 익숙해지지 않는 한 그렇다는 말이다. 익숙해지면 감금된 인간은 오히려 안정감을 찾곤 했다.) 천사는 에단이 좌절할까 걱정이 된다.

“그대의… 검 말인데.” 정하면 이 몸이 가져다 줄 수 있네. 이 정도면 까다로운 인간에게도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겠다. 에단은 침대에 걸터앉아 루이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은 일순 가늘어지더니 사냥감을 노리듯 날카롭게 응시해 온다.

“루이 님. 당신은…” 루이는 기대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은 말을 고르는 것처럼 긴 숨을 내쉬고, 말을 잇는다. 사실, 저를 꾀이러 온 악마가 아닙니까?

 

 

 

아니, 지금. 내가. 지금 이 몸한테 뭐라고 한 건가? 아니, 무어라? ………. 루이는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이만 소멸할 뻔했다. 이 인간은 지금 루이라는 생애 가장 큰 축복과 환희를 두고, 어떻게 이럴 수가? 악마라고? 내가? 루이는 정말, 말 그대로 대천사였다! 그의 후광만으로 자잘한 원혼들은 물러가고 풍랑이 잔잔해지며(무언가 신성한 일들의 나열을 상상해 보자…….)

루이는 뒤늦게, 억누르듯 재채기를 시작했다. 에단은 이제 조금 질린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어쩌다 보니 말로 전부 튀어나간 모양이다. 하지만 이건 다 그가 자초한 일이다. 루이는 새어 나오는 재채기를 간신히 참았다.

“당신이야 믿게 하고 싶겠지만, 원하는 걸 모두 들어주겠다고 한 뒤에 마지막에서야 조건을 딱 하나 걸려는 게 아닙니까?”

“당치도 않구나!” 루이는 순식간에 품위를 모조리 잃고 파들파들 떨었다. “헛소리!”

“증명할 수 있습니까?”

루이는 그 자리에서 자기 날개를 모두 펼쳐 보인다. 유람선과 비슷한 크기의 날개는 한 자리에서 전체를 보려면 대략 수 층 높이가 필요했으므로 일부는 작은 집을 뚫었을 것이다. 에단은 감흥 없이 루이가 만든 흰 날개 벽을 지켜 본다. “네 쌍이군요.”

완전한 수보다 꼭 하나 많지.”

“모독적입니다.”

신은 볼 적마다 재미있다며 좋아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루이는 지나치게 흥분하느라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이 몸을 좀 보게! 어떻게 내가 천사가 아니란 말인가!

“보고 있습니다만…. 당신이 무릇 ‘믿고 싶은’ 천사의 모습을 했다는 것만 알겠군요.” 그의 말투는 여전히 딱딱했다. 아마 지나치게 인간의 생김새와 닮았다는 얘길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루이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수호천사 이전에, 그대들을 사랑하는 임무가 내게 주어졌기 때문일세. …닮은 것이어야 사랑하기 편하거든.”

“그 말투도…”

루이는 연극적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루이로선 어쩔 수 없네! 그대는 신에게도 그대의 가치관대로 증거를 요구할 생각인가? 그런 불신자인가?”

“그건… 아닙니다.”

에단은 몸을 뻣뻣하게 굳히고, 마치 루이가 갑자기 달려들기라도 할 것처럼 긴장하고 있었다. 루이는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아무 기도문이나 하나 읊어 보게. 내가 이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쫓겨나는지 보지. 루이는 손을 내저었다. 인간은 이 말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나직하게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다. 고향에 관해 쓰인 소박한 기도이다. 언제나 우리 돌아갈 곳으로 돌아가게 하옵시고. 루이는 내내 에단과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한 단어도 대충 외거나 허투루 말하는 일이 없는 기도였다.

 

 

의심하는 게 불쾌하긴 해도 루이는 간절히 기원하는 인간들에게 이길 수 없는 애틋한 마음이 들고 만다. 그의 천성이다. 기도가 끝나고 루이는 감상을 묻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에단은 마주 불확실한 얼굴을 해 보인다.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하지 않은 적이 없네.”

마침 저녁식사가 들어왔다. 점심은 끼니를 때우는 시늉이나 했을 뿐이니 인간에게는 반가운 첫 식사겠다. 메뉴는 따듯한 계란과 소시지, 묽은 콩 볶음이다. 만찬은 못 되었으나 루이는 인간이 식사를 마치도록 한쪽으로 비켜나 주기로 했다.

그는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루이는 입을 열었다. 이 몸은 그저 선한 자, 그대가 행복하기 바랄 뿐이네. 적들은 그대에게서 항상 무언가 훔쳐갈 거리를 찾으며 의지를 꺾고 쓰러뜨리려 하겠으나, 이제는 루이가 지킬 테니 걱정 않아도 좋아.

“어려운 일을.” 에단은 짧게 대꾸했다.

“시도는 해볼 수 있지. 다 들었나?”

 

 

 

 

루이는 에단이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두터운 이불을 공중에 들어 그를 꽁꽁 감쌌다. 이건 예상 못했겠지. 에단은 (당연하게도) 당황했는지 움직이려다 그만 중심을 잃었다. 루이는 넘어지는 에단과 이불 덩어리를 통째로 침대에 넘긴다.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걸. 할 일도 없지 않나?” 무슨 짓입니까? 에단은 이제 불만스러운 달걀말이처럼 말했다. 루이는 웃음을 참았다. 으으응. 어제부터 감옥에도 있다가, 이젠 여기 갇히고, 고생스러웠으니 좀 쉬라는 의미일세. 게다가 이건 꽤 검증된 방법이지. 루이는 천천히 침대로 내려와 에단을 감싼 이불을 꼭 끌어안았다. …정말일세.

“차라리 검을 찾아 달라고 할 걸 그랬군요.”

“너무 늦었네.” 하지만 생각해 보지. 루이는 덧붙였다.

 

 

해가 저물어 조명이라곤 작은 등불 뿐인 방은 점차 어스름에 잠겼다. 에단이 숨을 쉴 때마다 이불이 느리게 부풀었다가 꺼졌다. 그는 루이의 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지는 않았으나 이 상황이 썩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한시로서는 얌전했다.

“그대는 얼마나 살았지?”

“스물 한 해 조금 넘었습니다.”

이럴 수가. 완전히 막 태어난 아기나 다름없군. 성을 내기엔 너무 귀여워. 루이는 이불을 톡톡 쓰다듬었다. 아시다시피 대부분 제 나이에 가정을 꾸리거나, 부모가 되기도 하지요. 에단은 천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간파한 것처럼 느리게 덧붙였다. 그러나 이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경향성일 뿐이다. 루이는 생각한다. 스물 한 살이면,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해도 충분하다. 대단하고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지 못해도 이상할 것 없었다. 하물며 살인자가 되고, 타국의 감옥이며 원치 않는 상황에 끌려 다니며 어떤 확실한 붙들 것을 찾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일 테다. 스스로 잘 하고 있는 일인지 확신하는 일조차 어려울 나이다. 언젠가 뒤돌아 보면서, 그 때 얼마나 고독하고 괴로웠는가를 간신히 잊을 시기이다. 그럼에도 에단은 신이 돌아보는 신실한 자로 남았다.

사랑스럽고 대견한 인간이 아닐 수 없다. 루이는 미소 짓는다.

“괜찮다면, 친구처럼 대해도 되네. 죽을 날까지 정도는 같이 할 테니.” 죽을 날이라 하니 참으로 멀고 오랜 얘기처럼 느껴졌다. 알겠다. 에단은 지나치게 순순히 응했다. 루이는 그다지 얕보였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인간과 친근하니 좋군. 이 몸은 멋진 수호천사야. 생각했을 뿐이다.

 

돌돌 말린 달걀말이는 안긴 채로 느리게 루이에게 몸을 기대 왔다. 루이는 ‘경건함’ 수치를 잠깐 확인했다.

“뭘 한 건가?”

“음, 별 것 아닐세.” 영혼을 확인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해서 쓸데없는 의심을 심어 주는 일은 좋지 않았다. 죽을 날이란 말에는 사실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인간이 악하고 병들어 수호천사를 악용할 여지가 생길 때 즉시 천사는 올라갈 것이다. 루이는 인간을 신뢰하기로 했다. 수치는 훌륭하다.

“준비가 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말해 주게.” 지금이 아니어도 좋아. 루이의 말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그냥 알아낼 순 없나?”

“그대에게서 듣는 것과는 다르지 않을까.”

에단은 가늘고 길게 드리운 등불 빛을 보고 있다. 그다지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루이는 인간이 그만 울적해지지 않도록 노래를 불러야겠다 마음먹는다. 낮은 허밍과 함께 이불을 천천히 쓰다듬자 에단의 심장 소리가 차차 느려졌다.

 

그가 기도한대로 어딘가 돌아갈 곳이 있어, 루이가 돌려보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루이는 행복해하는 에단을 상상해 보지만 잘 되지 않았다. 살인자. 인간의 옆얼굴에 음영이 드는 모양을 보며 떠오르는 단어를, 루이는 지우려 애써 본다.

 

 

 

 


천사의 딜레마 3[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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