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천사 루이와 인간 에단AU

이 글은 픽션이며 실재하는 종교와 어떤 관련도 없습니다.


 

강림의 날이다. 그 날은 성자에게 축복이고 악인들에겐 심판의 날이 될 터였다. 사람들이 뿌려 두고는 그만 잊어버린 작은 씨앗이 단단한 뿌리를 내려, 이윽고 풍성한, 아득하고 그리운 고향에서도 보이는 그늘을 만들 날이다.

대천사, 루이는 네 쌍 날개를 펼쳐 본다. 거대한 날개 그림자가 드리워 아래층을 거닐던 천사들이 모두 멈칫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루이는 일 없다는 듯 손을 내저어 보인다. 그를 신경 쓰지 않아도 천계는 충분히 분주했다.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저 아래의 말단까지 그랬다. 루이는 인간들이 미처 그러리라 생각도 못한 때에 그의 경건한 행실과 믿음이 판가름나는, 일련의 기계적이면서도 정기적인 과정을 난간 위에서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일천여 년만의 강림이다.

루이는 창조의 순간을 기억한다. 모든 천사가 그러할 것이다. 인간과 달리 그들은 존재하는 다음 순간 스스로의 목적과 쓰임새를 깨닫는다. 그렇기 때문에 뛰어나며, 또 그렇기에 쌓이는 벽돌과도 비슷했다. 이 대천사는 먼 태초에 흩어지던, 그 중에서도 폭발하는 초신성의 밝기와 같이 빛났다. 색을 모조리 잃은 네 쌍 날개는 웃자란 플라타너스 나무 정도이고, 그를 구성하는 금빛은 세계에 어떤 아름다운 색채의 인상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루이를 만들어낸 우주의 화음은 이제 다른 곡을 구성할 생각조차 없는 양 그 근처를 항상 맴돌았다. 루이에게는 원한다면 신에 필적하는 권능이 주어졌지만 어느 추락한 새벽별처럼 지저분한 질투심에 스스로를 불태우지는 않았다. 루이는 (어떤 선택지처럼 말할 수 있다면) 스스로의 삶에 만족했다. 그의 일은, 뭉뚱그려 요약하자면 대체로 인간을 사랑하는 일이다. 루이가 가장 잘 하는 일이기도 했다.

작은 천사 엘이 어느새 와 있었다. “내려가시는군요.” 그는 쾌활한 어조로 루이에게 말을 걸었다. 대천사라 해도 견습과 대단한 계급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필요할 때에 명령하고 순종하긴 했으나 이는 역할놀이에 가까웠다. 그래. 루이는 대답했다. 목소리는 그가 상상하던 것보다 들떠 있었다. “한동안 루이 님을 못 뵈겠네요. 아쉬워요.” 나도 그렇네. 이 몸의 부재가 큰 손실이 되지 않아야 할 텐데 말야. 느하핫! (루이 특유의 언사는 너무 독특한 나머지 천계 내의 천사들에게 컬트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의 성스러움에 전혀 누가 되지 않음이 가장 기이한 지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자기자랑 대부분이 맞는 말이어서인지도 몰랐다…….)

엘은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다. “분명 계실 때와는 많이 다르겠지요.” 진실한 어투였다. 루이는 손가락을 들어 엘 근처에 약한 바람을 일으켰다. 눈 깜짝할 사이 돌아올 걸세.

 

대천사의 강림은 창조의 순간부터 이미 예견되어 있을 정도로 드물다. 이제야 때가 왔다. 인간계 위에 차츰차츰 죄악이 덮여 가고, 세상에 몇몇 선한 영혼만이 남은 때. 그렇다. 어떤 거대한 죄 앞에서도 그것이 틀렸음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 어두운 물결에 허우적거리며 빛을 찾는 자. 가엾게도 평생에 제대로 된 인간의 도움이라고는 받지 못할 이……. 이런 이들은 사는 동안 일찍 살해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렇기에 대천사가 나서게 되었다. 루이는, 그의 수호천사가 될 것이다.

루이는 그의 옆에서 심부름거리를 정리하는 엘을 건너다본다. 창조된 대천사와 달리 엘은 붙들려 온 선한 영혼이다. 곧 있으면 그도 수호천사로서 첫 인간을 찾아가겠지. 그가 가능한 선한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키며 붙들게 될 것이다. 이만 작별 인사를 하니 엘이 다가와 루이에게 짧은 포옹을 했다.

어떤 인간일까? 루이는 지난번 꼴이 나지 않길 내심 바란다. 그이는 천사를 보고 너무 대경한 나머지 실신하여 시름시름 앓더니 얼마 못 가 죽고 말았다. 선한 영혼에게 있어 안타까운 일이다. 루이는 그의 영혼을 받아들이던 날을 기억했다. 아직도 남은 상심 때문이었는지 이번 인간은 거의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일천여 년간 루이에게 인간들은 개개의 존재가 아닌 어떤 집단에 가까웠다. 이번은 다를 것이다. 인간들의 지능도 나날이 개선되어, 천사의 존재가 (아주 진실에 가깝진 않으나) 꽤 알려져 있다. 인간의 수호천사 노릇은 그다지 해본 일이 없지만, 루이는 지난 사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잘 해낼 수 있음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대천사가 아닌가? 그의 가호 아래 어떤 인간이 차마 불행할 수 있겠는가? 지난 일은 어처구니없는 우발적 사건이었을 뿐이다. 루이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 그런 식으로 얼마든지 있다. 그게 신과 그의—간발의—차이겠다. (하지만 루이가 떠올리기에, 그 사실이 신을 하루하루 지겹게 만드는 것 같았다. 불경한 생각이다.) 발 밑에 천천히 공간이 열리기 시작한다. 신의 부름에는 조금도 늦지 않게 답해야 했다. 루이는 연습한 말을 입속으로 중얼거린다. 두려워 말라.

 

 

 

 

 

 

은색 새벽이다. 대천사는 약한 인간의 눈이 멀지 않을 정도의 빛을 찬찬히 공간 사이로 내리쬐어 본다. 여섯 벽이 숨막힐 정도로 짓눌러 오는 좁은 곳이었다. 무덤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루이가 알기로 어떤 무덤은 이보다 크다.) 벽 정도야 없는 것처럼 지나갈 수 있지만, 그랬다간 인간의 눈으로는 벽에 대롱대롱 박힌 것처럼 보일 터이므로 루이는 천천히 날개와 몸을 굽혀 본다.

인간은 이 새벽 혼자일 테다. 루이는 등을 돌린 인영을 쉽게 발견했다. 잠든 게 아니라면, 루이의 빛 때문에라도 곧 돌아보게 될 것이다. 정말 놀라지 말아야 할 텐데.

인간은 천천히, 노란색—아니, 다른 쪽은 검었다. 신기한 빛깔이다. — 눈동자로 루이를 돌아보았다. 흰 옷자락을 따라 천천히 올라오는 시선이 이윽고 루이와 맞닿았다. 루이는 공중에 떠 있었으므로 자연히 올려다보게 되었다. 무서워하지 말아. 루이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정성을 들인, 달래는 음성을 내어 보았다. 날개를 모두 펼 수가 없어 한 쌍만 펼친 채였다.

인간은 기절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했다. 일단 한 고비는 넘겼군. 루이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 선한 자, 그대에게 이 루이가 왔네. 에단 아스터 버틀러.

 

바람 소리가 세차게 방을 흔들었다. 방풍이 형편없군. 이런 날씨에 인간을 두면 병들고 말 거야. 루이는 그곳이 감옥이라는 것을 천천히 깨달았다. 인간은 거의 눈도 깜빡이지 않고 루이를 바라보더니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

“신의 사도………이십니까?”

“그렇네.”

“제가 알던 형상과 달라…, 미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처럼 신과 가까운 자라면 분명 세라핌의 환상 따위를 보았을 테다. 우주의 팽창이 끝나기까지 찬양을 멈추지 않는 생물들. 루이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렇지만 보통이라면 흐릿하고 먹먹한, 날개 달린 생물의 형상만을 얼핏 보았을 텐데, 이 인간은 제법 천사를 또렷이 볼 수 있는 게 틀림없다.

“용서하도록 하지.”

“저에게 무슨 소식을 전하러 오셨습니까?” 인간은 놀랍게도 침착함을 빨리 되찾았다. 고요한 굳은 표정엔 어떤 고집이 서려 있는 듯도 하고, 루이가 말하기도 전에 이미 내용을 짐작해 내려는 것 같았다.

“아, 좋은 소식이네. 아주 기쁜 소식이지.”

“…저를 데려가시려는 겁니까?”

으응? 그 일은 아직일세. 이 몸도 언제 올지는 모르지. 루이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안심이 되는가?

“모르겠군요.”

“그럼 지금부터 안심하도록 하게.” 에단이 고개를 들었다. 대천사는 자비롭게 웃어 보였다. 그대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 줄 수호천사가 여기 왔으니 말이야.

 

선물일세. 즐거워해도 좋아. 루이가 한쪽 눈을 찡긋해 보여도, 인간은 혼란스러운지 대답을 곧장 않았다. 최대한 친근하게 다가갔건만, 갑자기 나타난 이계 생물을 향한 긴장은 누그러뜨리기 어렵다. 루이는 눈을 깜박였다. 이 인간은 수호천사가 어떤 존재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루이가 어떤 수호천사인지는 간단한 단어에 담길 수 없었다.

신이 사랑하는 가장 강한 천사를 보냈음은 곧, 어떤 인정에 가깝다는 것을 말이다. 루이는 인간 중에서도 가장 경건한 자, 그의 믿음을 결코 저버리지 않은 자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그가 살아갈 남은 생애에서 결코 넘어지지 않길 바라며, 천계에 도달할 그 날까지 풍요롭기를.

 

아무래도 직접 보여주는 게 나을 것이다. 루이는 있는 곳에서 조금 더 떠오르며 가볍게 허밍을 시작했다. 그를 이루며 완성하는 우주의 화음이다. 어떤 음악에도 구성되지 않는 음이며, 루이만큼이나 오래된 찬송이었다. 그것들이 루이 주위에 궤적을 그리며 공기의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그래, 당장은 어떤 걸 원하나? 루이는 흰 손을 뻗었다. 재물, 지혜, 명성. 다 가능하지. 우선은 여기서 나가게 해 줄 수 있네. 그 말이 땅에 떨어지자 마자 요란하게 쇠가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에단이 위치한 감옥뿐만 아니라 거기 있는 문들이 모두 열리는 소리다. 복수……. 경우에 따라 가능하네. 승리… 쉽지. 루이는 여전히 노래하고 있었다. 저 고함치는 자들이 거슬린다면 잠깐 재우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야. 새로운 삶. 새로운 땅을 찾아줄 수 있네. 여태까지의 삶이 잊혀질 머나먼 곳으로 가고 싶나? 아니면, 예언가가 되길 원하나? 더 나은 삶을 만들어 줄 물건을 구상하고 싶은가? 그래, 몸을 투명하게 만들 수도 있네! 잠깐이지만.

 

어떤가? 어떤 걸 원하나? 에단. 그대의 천사에게 말해 보게. 열린 문 너머 복도에서는 웅성대는 소리, 돌 부딪히는 소리,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 따위가 울려 왔다. 에단은 그 소리에 정신이 팔린 것처럼 시선을 돌렸다. 루이는 조바심을 내지 않기로 한다. 두려워하지 말게.

방금 만났지만 루이는 그가 대단히 신중한 인간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에단은 기회를 틈타 나서지 않고 대신에 문 밖을 탐색하더니, 막 탈출하려던 자에게 휘파람으로 경비가 있음을 알렸다. (물론 에단 근처까지 왔다면 루이가 어련히 처리했을 테다.) 서서히 소란이 잦아드는 게 느껴졌다.

루이는 인간 옆에서 열렸던 문이 도로 잠기는 소리를 듣는다. 에단 앞의 창살만이 활짝 열린 채였다. 루이는 여전히 소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결한 사도시여.”

“그냥 루이라고 불러도 돼.” 루이는 산뜻하게 제안했다.

“……루이 님.” 에단은 어색한 발음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드디어 시작되는군. 영영 행복한 인간을 만들 대천사의 권능이 말이야, 이 쓸쓸한 감옥에서부터. 루이는 속으로 못내 웃는다.

 

 

 

 

 

 

“당장 바라는 건 없습니다.” 그러나 에단은 그의 마음대로 되게 하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뭐. 없어? 루이는 한껏 황당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게 에단조차 당황하게 만든 것 같았다.

“그…?”

“그대, 지금 감옥에 갇힌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포로로 잡혔으니까요.”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바라는 게 없다고?” 루이는 낮게, 동의를 구하듯 묻는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답하라는 뉘앙스였다.

“그렇습니다.”

이 인간은 뭔가? 겸손도 정도가 있지, 감사 그리고 회개와 더불어 도무지 인간의 힘으로는 방도가 없는 일을 신에게 맡기는 것이 기도의 일부 아니었던가? 이 감옥을 루이의 힘 없이 제 발로 탈출할 수 있는가? 아니라면, 나가기에 껄끄러울 정도의 진짜 죄라도 지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왜냐하면 에단은 가장 신실한 인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여기가…… 만족스러운가? 루이는 문득 주위를 둘러 본다. 에단이 발도 뻗을 수 없을 것 같은 돌침대에 더러운 위생 시설, 한쪽에는 늘어진 구속구가 있었다. (여건이 좋지 않을 때는 묶일 수도 있다는 말이겠다.)

“…여기 꼭 있을 필요는 없네. 그대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야.”

“괜찮습니다.” 그러더니 인간은 뻔뻔스럽게 침대 같지도 않은 돌 위에 걸터앉는 것이다. 루이는……… 에단의 말을 거스를 수가 없다. 그를 강제로 붙들어서 안락한 곳으로 옮겨 놓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건만,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천사는 계속 좁은 감방 안에 떠 있게 되었다. “혹시 불편하신 건 아닙니까.” 루이의 안색이 대놓고 흐려졌는지, 에단이 정중하게 물어 왔다. 루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 신체적인 불편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 신체부위부터가 그저 겉치레일 뿐이었다.

“그럼……….”

에단은, 처음 만난 인간들이 어색한 작별 인사를 하듯 고개를 숙였다. 루이는 힘없이 답했다. 원한다면 그대에게 보이지 않게 할 수는 있지만, 이 몸은 기본적으로 수호천사이니 그대 옆에 항상 있도다.

“…………그렇군요.” 사생활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인간과 천사가 서로 다른 종족임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천사 사이에서도 사생활은 있지만 꼭 인간에게까지 지켜야 할 도리는 아니었다. 루이는 물론 에단이 어떤 비밀을 지키(고 있다고 믿)도록 둘 용의는 있었다. 인간의 삶에는 그런 게 필요한 법이겠다. 자기만의 비밀이나, 목적의식이나, 그런 것들.

 

에단은 루이의 얼굴을 새삼스레 뜯어보듯 살핀다. 그의 권능을 의심하는 것 같진 않았다. 따지자면 어떤 말을 해도 될는지 고민하는 듯했다. 다행히 천사에겐 마침내 떨어질 말을 기다릴 영겁의 시간이 있었다. 조금 뒤에 에단이 입을 떼었다. 그럼,

“여기 있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실 루이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지만 에단은 그 말을 꼭 간청처럼 했다. 그래서 대천사, 이제 수호천사인 루이는 이를 첫 소원으로 쳐야 하는가 잠깐 고민한다. 그리 대단치도 않은 소원이다. 아무래도 어떤 규모의 소원이 가능한지 다시 한 번 교육해야 할 것 같았다.

“기꺼이.” 에단은 그 말에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루이가 이것을 읽기는 어렵지 않았다. 작은 기쁨…을 찾아 내고 천사는 갸웃한다. 의외의 감정이다. 물론 루이와 함께하는 건 뭇 이에게 기쁠 일이긴 했다.

 

그는 잠들지 않으므로 에단에게 이만 자라는 인사를 건넸다. 깨지 않도록 빛을 줄여 주기도 했다. (사실 조금 우스운 광경이다.) 에단은 천천히 몸을 누이며 몇 번이고 루이를 힐끔거렸다. 루이는 부탁 받지 않았지만 작은 은혜를 베풀기로 한다. 천사를 만난 밤에 금세 잠들기는 어려울 터이므로.

한 번의 손짓에 까무룩 잠든 인간은 고요히 숨을 쉰다. 루이는 공중에 떠서 그의 인간을 내려다보았다. 나쁘지 않다. 그의 ‘경건함’을 확인하니 아주 훌륭한 수치였다. 좋은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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