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천사 루이와 인간 에단AU

이 글은 픽션이며 실재하는 종교와 어떤 관련도 없습니다.

 

천사의 딜레마 1[링크]

천사의 딜레마 2[링크]

 


 

 

에단은 그 집에서 두 통의 편지를 썼다. 하나는 국경을 넘고 또 하나는 좀 더 가까운 곳에 도달할 것이다. 살해 혐의의 탄원을 위해서라면 다소 미진해 보이는 노력이다. 남는 시간에도 단련 따위로 잠들 적까지 끊임없이 몸을 움직였다. 루이는 매일 반복되는 훈련 과정을 곁눈질로 보며 이따금 말을 걸곤 했다.

루이의 인간은 성실한 편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는 데 익숙해지도록, 몇 년간이나 훈련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그 편이 ‘선한’ 인간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루이는 생각한다. 여유 시간은 인간에게 사고할 여유를 주고, 사고할 능력이란 대체로 축복이면서도 꼭 인간들을 길 잃기 좋은 곳에 떨어뜨렸다. 어두운 곳, 한 발이라도 내딛는 순간 무너지기 쉬운, 그들의 머릿속 그 자체로. 그곳은 대체로 신의 인도가 필요하며, 있더라도 인간들은 곧잘 울며 비명을 질러 댄다. 그들이 머릿속에서 자기 자신을 보고, 타인을 보고, 이윽고 세계를 목도할 때 그렇다. 대천사로서 루이는 가엾은 인간들이 이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느낀다.

다만 극도로 억제된 인간들은 대체로 한 가지 욕망에 매몰되기 쉬워, 루이는 인간이 이 함정조차 피했음을 즐거워하기로 한다. 좋은 군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회 비용이 지나치게 크다. 루이는 그가 기억하는, 그만 손아귀에서 놓쳐 버린 군인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후회하고 증오하고 루이 앞에서 도망하거나 그를 저주했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대천사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했다.

 

이어지며 흐르는 격투 동작을 수 차례 반복하고 에단의 목이며 등은 얇은 땀에 젖어 있다. 곧고 집요한 시선이 흔들리거나 떨어짐 없이 온 신체의 균형을 잡았다. 루이는 그 손에 희미한 칼의 형태가 쥐어진 양을 본 것 같았으나, 다시 보니 없었다.

“이 몸이 도와줄 것은 없는가?” 루이는 벌써 수백 번이나 물은 듯한 질문을 다시 꺼낸다. 가벼운 톤이다.

“상대가 되어 줄 게 아니라면, 없다.”

“춤 상대라면 환영이네만.”

에단은 작은 미소도 없이 고개를 저었고, 루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날개를 가볍게 털어냈다. 거의 쓸 일이 없으므로 작게 접어 둔 채였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고는 생각 말게. 이 몸이 전투를 위한 사도가 아니라서 말일세. 하지만 싸우지 않고도 그대를 지키는 일에는 문제없으니, 염려 말아라.

 

참, 전투 하니 생각나는데, 여기 있네. 루이는 정말로 방금 생각난 것처럼 등 뒤에서 슬그머니 손을 빼냈다. 에단의 검이 거기 들려 있었다. 전에 생각해 보겠다고 했었지. 그대에게 중요한 물건 같았네. 그건 무게가 제법 되고 정교한 세공이 끄트머리에서부터 둥글게 검신을 감싸는 부분까지 새겨져 있다. 루이가 들여다보니 백합을 본뜬 문양이다.

보관자의 실수로 인해 ‘우연히’ 분실된 것이니, 이후에 꾸며낼 준비를 하게. 에단은 눈을 크게 뜨고(루이가 최근에 본 표정 중 가장 격한 표현이었다.) 한 걸음 다가오더니, 양 손으로 루이에게서 검을 받아 든다. 루이는 순순히 그가 검을 휘둘러 보도록 물러섰다. 검신이 무겁고 야멸차게 허공을 꿰뚫었다. 에단은 그러고도 몇 번이고 빈 공간에다가 공격을 계속했다. 이미 훈련으로 체력을 뺀 데다 실내에서 이어 가기에는 위험한 감이 있었으나, 루이는 인간이 나름대로 반가움을 표현하는 방식이라 생각하고 만다. 뒤늦게 시선이 돌아왔다.

“고맙다.”

“당연한 일이네. 그대를 위해서라면.” 루이는 그러나 우아하게 인사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대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가?”

에단은 검을 내려놓고 어깨를 앞뒤로 풀었다. “올 지 오지 않을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렇지만 기다리고 있군.”

“그래.”

가족은 아니고. 루이는 짐작한다. 연인이나 친구로군. 인간의 성격으로 보아 내놓고 도움을 요청하진 않겠지만, 사형 재판을 앞두고 기다릴 정도라면 제법 가깝거나 유용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루이가 몇 번이나 완벽한 계획을 세워 도망치기를 제안했지만, 에단은 도망이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번번이 퇴짜를 놓았다. 한 번은 ‘그대, 불순종의 죄를 범하려는가?’ 하는, 꽤 협박 같은 말도 건네 보았으나 에단은 ‘틀렸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진 않는다.’ 할 뿐이었다.

그 말대로다. 루이가 닥쳐올 큰 위기에서 인간을 구해낼 만한 이른 방도를 여러 개 찾았을 뿐, 이는 반드시 따라야 할 절대명령이 못 되었다. 그러니까, 루이 위에 있는 누군가의 말 같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수호천사가 나름대로 구상한 행복을 위한 계획은, 그 목적과 필연적으로 이어진다 할 수 없으므로 거절하더라도 죄라 할 순 없다. 에단은 그걸 훤히 꿰고 있는듯 천사의 수작을 매번 피해갔다.

 

경건한 인간. 두고 보자. 루이는 에단의 작은 머리를 끌어안고 내심 분개한다. 포옹은 그들이 하루에 한 번씩 꼭 하는 의례가 되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신체 접촉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처음에 몹시 불편하고 빨리 벗어나려는 기색을 보였지만 이제 안긴 채로 다른 생각에도 빠지는 모양이었다.

“에취!”

“마음에 안 든다는 생각을 요란하게도 하는군.” 에단이 천사의 가슴께에서 중얼거렸다.

가끔, 다가올 재판은 아주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들이 보내는 날들은 아주 평화로운 듯도 했다. 그러나 방 밖에는 여전히 지키는 군인이 있고 에단은 창을 열 때에나 겨우 바깥 공기를 마셨다. 그 공기에는 미묘하게 물 냄새와 오물 악취가 섞인 향이 난다.

 

 

 

 

 

그러고도 두 주 뒤다.(재판은 한껏 밀리고 있었다.) 루이는 거실 쪽 창 밖으로 보이는, 얼룩진 부분까지 언제나 꼭 같은 회벽을 바라보다 문득 입을 열었다.

“손님이 오나 보아.”

에단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자 루이가 손을 저었다. “도착까지 두 시간 정도 남았네. 그냥 알려주려 했어.” 그럼에도 에단은 어떤 준비를 하려는 것처럼 방 안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그들에겐 손님에게 낼 홍차나 과자 따위도 없었으므로 소용 없는 일이다.

루이는 에단의 표정이 기대에 차기보다는 점점 심각해지는 모양을 지켜본다. 이상한 일이다. 그는 분명히 이 손님들을 만나려고 했다. 편지까지 쓰고 쭉 기다렸던 참이다. 거기엔 이유가 있었을 텐데, 어쩐지 이제 그는 다가올 상황을 싫어하는 것 같다. 초가 갈수록 그랬다. 그렇지만 루이는 에단이 다른 인간을 만나야 한다고 느꼈다. 그가 자기 수호천사를 제외하고 제대로 된 인간과 대화한 지가 오래다. 루이가 썩 끔찍한 대화 상대는 아니지만, (그는 천천히 아사해 죽어가는 예언가와 사십 일간 얘기한 적도 있다. 그는 아름다운 환상을 보는 채로, 웃으며 죽었다.) 만일 마지막에 면회를 받지 않겠다거나 이게 틀렸다고 마음을 돌리기라도 하면…….

 

“………의미를 알려 줄 수 있겠나?”

“글쎄?” 루이는 에단의 뺨을 양 손으로 꾹 누르며 말했다. 아주 심각한 눈썹 아래는 살이 눌려 꼭 금붕어 같이 되었다. 이거 우습고 귀엽군. 인간이 말할 때마다 이 얼굴을 상상하는 게 좋겠어. 눌린 발음으로 에단이 말했다. “치워라.” 차마 천사의 손을 떨쳐낼 용의까진 없으나, 아랫배를 긁는 듯한 저음이 요지를 충분하고도 남게 전달하고 있었다. 루이는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오늘 훈련이 없다면 정말 춤 상대라도 해 줄 수 있네.”

“사양하지.” 춤을? 여기서? 지금? 인간은 영 지겨운 표정을 짓는다. 아무리 할 짓이 없더라도 그것만큼은 하지 않겠다는, 어떠한… 의지가 엿보였다. 루이는 공중에 둥둥 뜬 채 에단의 양 손을 잡고 팔을 벌려 본다.

“못 할 건 무언가? 이 몸의 실력은 그리 나쁘지도 않네. 황홀하더라도 놀라지 말게나!”

“천사들도 춤을 추는가?” 루이는 천천히 에단의 손등, 뼈가 도드라진 부분을 더듬었다. 그럼, 노래하는 것도 보지 않았나? 아주 큰 연회장을 상상해 보게. 천장은 없고 위쪽은 동경의 별들이 수 놓여 있지. 우리는 시간이 되면 나팔꽃이 얇은 꽃잎을 다 펼 때까지 춤을 추다가 나선 대열을 하고 하늘을 날아가네. 그러면 종말까지 영영 퍼지는 치천사의 노랫소리와 함께 이 땅이 창백하게 빛나는 광경을 보지. 나는 매번,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생각하네. 그대들의 작은 몸짓이… 보이지도 않을 미미한 강도로, 그러나 살아 있는 기쁨으로 춤추는 일을 상상하기에 그렇네.

 

그건 그렇고, 춤출 텐가? 천사는 고개를 휙 내렸다. 어느샌가 깍지를 낀 채였다.

“…손님이 곧 올 텐데.” 그러고 에단은 시선을 내린다. “게다가, 그 상태로 스텝을 밟을 수는 있나?” 인간을 만난 후 루이는 한 번도 땅에 내려선 적이 없었다. 그다지 금기시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아, 습관일세.” 루이는 벗은 발을 천천히 에단의 신 앞에 내려놓았다. 날개를 뺀 천사의 몸체는 인간과 비슷하게 떨어졌다. 에단은 짧은 한숨을 짓고 루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천사는 기억나는 아무 멜로디를 흥얼거려 본다. 박자는 느렸다. 한 발을 뒤로, 그리고 바싹 다가섰다가 옆으로, 에단이 아는 동작은 루이에게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둘은 좁은 방에서 경쾌하게 나아가 본다. 좀 더 넓었다면 어지러울 정도로 빙글빙글 돌 수도 있었을 테다. 루이는 재미있는 충동이 일어, 인간의 허리를 붙들고 그대로 밀었다.

……………

………

루이는 한 팔로 에단을 받히고(통상적인 물리 법칙은 대천사를 그다지 방해하지 않았다.) 몸을 숙이고 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날개를 위로 젖혀야 했다. 에단은 긴 머리를 뒤로 늘어뜨리고 천사를 올려다본다. 그게 마치 막 긴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부릅뜬 눈이 천사를 향한다. 팔을 꽉 붙들리고 난 후에, 놀랐나? 루이는 놀리듯 말을 걸었다.

그 때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면회였다.

 

 

 

 

 

“에단 형님!” 문이 열리자마자 부리나케 한 인간이 달려왔다. 그 속도가 가히 퓨마에 비견될 정도였다. “편지 받고서 바로 달려왔습니다! 몸은 건강하십니까?!”

“그래.” 에단은 짧게 답했다. 그들은 한쪽이 보이는 열렬함에 비해 꽤 의례적인 인사—경례를 나눈다. 뒤에서 다른 이가 준, 날 두고 먼저 가지 말랬잖아. 하며 뒤따라 들어왔다. 그는 짧게 방을 훑어 보더니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그들이 어떻게 형님을 여기서 재판하게 둡니까? 오히려 영웅으로 극진히 모셔야 하는 게 아닙니까? …모든 정황이 자기방어였을 뿐, 평화 조약을 어겼다니 어불성설입지 말입니다! 오히려, 형님은 수도의 근위대장이 되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빠른 성토가 이어졌다. 루이는 고개를 기울이고 에단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다시 그의 껍데기 같은, 차가운 무표정을 짓고 있다.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봤지만, …저로선 여기까지 오는 일도 어려웠어요. ‘공작’께서 안부 전하더군요. 차분한 인간도 거들었다. 미련한 자가 가는 지옥이 있다면, 그곳에 가라… 하고요.

“테오 아버님도 나쁜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건 아닐 겁니다!” 준이 (지나치도록) 해맑게 덧붙였다.

“그 인간은 본인이 천국에 가리라 추호도 의심 않겠지.” 테오라 불린 인간은 입을 가린 손수건 너머로 시니컬한 웃음소리를 냈다. 지옥에 떨어지는 걸 직접 보고 싶네. 그는 섬세한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아마 인간 사이에서는 지위가 높은 이일 테다. 에단을 도와줄 가망이 가장 큰 인간일 텐데, 곤란하게 되었다. 루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천사로서, 그들을 영혼의 저울에 달아 본다. 나쁘진 않지만 아주 좋지도 않았다. 그의 인간과는 비교도 되지 못했다.

 

준은 가까이 다가서서 비밀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에단 형님, ……왕자님은 무사합니다.” (성량이 그다지 비밀스럽지 않았지만.) 그 말에 에단이 일시에 긴장을 푸는 게 보였다. 수호천사가 아니라면 보지 못할 차이였다. “지금은 형님께서 보내신 은신처에서 보호받고 계십니다.”

“그건 그렇지만, 에단은 이런… 지저분한 곳에서 사형 재판을 기다리는 참이잖아.” 테오는 불안한 듯 방을 서성였다. (이 인간이 감옥 꼴을 봤다면 필시 기절할 게 틀림없다.) 에단이 가볍게 한 손을 들었다.

“아니, 편지에도 썼듯이, 굳이 애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준이 반박해 보였지만 에단은 아예 고개를 돌렸다. “전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가도 좋아.”

“어떤 각오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형님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탈옥이라도 감행할 겁니다!” 오, 그거 잘 됐군. 여태 이 수호천사 홀로 설득하고 있었건만 지지자가 한 명 늘면 좋은 일이다. 루이는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탈옥이라는 말 좀 크게 하지 마. 테오가 급히 준의 팔을 잡았다. 결국 방문한 인간들조차 뚜렷한 해결책은 없는 셈이었다. 오히려 나쁜 소식만 더해질 것임을, 루이는 문득 직감한다.

 

이미 아시겠지만, 돌아오더라도 반역죄로 처벌받을 것입니다. 소란의 주동자가 당신으로 지목되어 있으니까요. 저나 준은 에단을 변호할 수 없습니다. 적절한 위치가 아닐 뿐더러… 이미 여러 번 실패했지요. 테오가 낮게 말했고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렇게 모였으니, 같이 방법을 궁리해 봅시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맞아. 그러려고 했어요.” 둘은 꼭 쌍둥이처럼 호흡이 맞았다. 루이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 대화를 듣고 있다가 문득 불타는 주홍 머리와 눈이 마주쳤다. 음? 눈이 마주쳤다고?

 

 

“그런데, 이 분은 누구십니까? 병사는 아닌 것 같고.”

“으응?” 루이는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그 소리에 테오도 이쪽을 돌아보고는, 여태 깨닫지 못했는지 눈을 크게 떴다. ……… 생각해 보니 방금 내려올 적에 아예 인간들에게 보이도록 되었나 보다. 물론 날개는 숨긴 채였다. 루이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이것은 사소한 실수라기보다, 그다지 들켜도 상관 없다는 여유에 가까웠다. 어쩌면, 에단의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에단을 흘끔거리니 주먹을 꽉 쥐고 있다. 루이에게 눈을 세차게 깜빡이는 걸 보니 무언가 말하려는 것 같았다. 참,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나도 모르겠네. 루이는 순진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아무튼 스스로를 소개해야 했으므로 말을 이었다. 아아, 이 몸은 루이라네…

무어라 한다? 천사입니다? 천사는 대충 설명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먼 남쪽 나라의 왕자일세. 에단과는 다소 친분이 있어, 도우러 왔지.”

 

먼 나라 왕자. 그게 네 변명이냐? 먼 나라 왕자? 인간의 얼굴에 짙고 어두운 기색이 끼기 시작했지만 둘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음… 반갑습니다.”

…보았느냐? 이 몸의 권능이니라. 루이는 에단을 향해 비죽거렸다.

 

 

 

 

 

 

세 명과 한 천사가 모였음에도 혐의를 벗거나 재판을 피할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아주 많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대부분 기각되었고(루이는 악어가 나오는 계획이 마음에 들었으므로 아쉬울 따름이다.) 면회 시간은 금방 끝났다. 둘은 이 지역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모양이었지만, 어쨌든 다음에도 찾아오겠다 약속하고 집을 나섰다.

에단은 침대에 앉아서 벽을 바라보고 있다. 루이는 땅에 붙이고 있던 발을 부드럽게 다시 띄웠다. 이 행성이 모두를 붙잡아 두듯 당겨오는 힘을 느끼는 일은 재미있지만 오래 할 것이 못 되었다.

“즐거웠나?”

“즐거워야 했나?” 에단은 반문했다. 루이는 가볍게 날아 그 앞에 멈췄다. 그는 다소 지루한, 그리고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천사는 그런 얼굴을 어디선가 본 것도 같았다. (정확히, 신은 표정을 짓지 않지만 루이가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 루이에게만 특별히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긴 권태나 좌절과 비슷한 것. 오랜 친구의 방문을 받고 보일 만한 반응은 아니다. 새삼 방법이 없음에 좌절한 것도 아니다. 루이는 어렵게 입을 떼었다.

“그대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지.”

“너도 그렇지 않나.”

 

아아, 에단 아스터 버틀러. 루이는 인간을 반절 정도로 작게 만들어서 뭇 사람이 아기를 안아 들듯 안아 주고도 싶다. 대신에 그는 날개 그늘을 에단에게로 기울였다. 조금도 두려운 생각이 들지 않는 그림자다. 그는 여전히 루이와 눈을 맞추지 않고 있었다. 루이는 팔을 들려다가 이만 내렸다. 다른 이야길 해 보기로 하지.

“처음에 그대는 이 몸이 악마인 줄 알았다고.”

“그래.”

루이는 턱을 치켜들고 잠시 ‘허튼소리!’ 표정을 해 보였다가, 곧 누그러뜨렸다. 그런데 왜 쫓아내질 않았지? 기억하기로는, 장단 맞춰 주지 않았던가?

“…모르겠다.” 천사는 거짓말을 빠르게 감지했다. 루이에게 꼭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일까? 루이는 손가락을 들어 에단의 턱 밑에 두었다.

“다음에는 그러지 말게. 이 몸이 다른 무언가였다면, 하마터면 선한 인간, 그대를 잃을 뻔하였지 않나. 그게…”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다면야. 루이는 뒷말을 잇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떤 인간이 그렇게 생각하겠는가? 악마라도 기꺼이 대꾸해 주겠다는 성의를 내겠는가? 자격 없는 혐오자들이나 그런 생각을 할 테다. 에단은 천천히 루이와 시선을 맞췄다. 호박과 재의 색이다. 루이는 이 인간에게 어떻게 좋은 일을 해 줄 수 있을까?

“아직도 다소간은 의심 중이다.” 흉흉한 말을 한 것 치고 에단은 평온한 눈을 하고 있었다.

“이 논쟁을 다시 시작하진 말지.” 루이는 상냥하게 대꾸했다. 턱을 받히던 손이 스르르 뺨으로 옮겨 갔고 인간은 엄지가 차가운 볼을 쓸어 내리는 동안 별 말 않았다.

 

 

 

 

 

“그대가 죽인 이에 대해 생각한 적 있나?” 루이는 지금이 썩 좋은 타이밍인가 잠깐 가늠해 보지만, 이미 말을 뱉은 뒤다. 에단에게서는 짧은 혐오가 읽힌다. 그는 굳은 표정을 해 보였다. 군인의 표정이다.

“가끔. 같은 상황이 온다면, 다시 한 번 죽이리라 생각하지.” 무엇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슬픔이라던가. 루이는 복잡한 심경이 된다. 동등하게 사랑하는 인간들이 살육을 번복하는 일은 천사에게 심히 야만적이고 끔찍하게 느껴졌다. 인간이 처한 불행한 상황 탓을 할 수는 있다. 아마도, 죽이지 않았다면 죽었을 것이다. 혹은 땅이 너무 가까웠거나, 같은 먹이를 노렸거나, 짝을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루이로서는 차마 이해하기에 너무 악하고, 혹은 허망한, 수많은 이유들이 있다.

“죽은 이의 가족이 찾아온다면 어쩔 텐가?” 루이는 여전히 에단의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다지 대단한 자도 아니었다. 가문의 방계지. 부르는 이름조차 좋게 말해 ‘귀족’ 아닌가. 변변한 작위도 없는 놈이다. 그랬으니 타국의 왕위계승 사정에 끼어들었겠지만.” 에단은 불쾌한 듯이 시선을 한 구석에 고정하고 있었다.

“그의 지위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네.”

“아니지. 그러나 그의 소위 ‘가족’은 그럴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운 좋게 살해자로 잡힌 이의 교수형 뿐이야.” 그럴 수 있다. 이 시대는 악했으므로 인간들은 서로 도무지 사랑할 줄 몰랐다. 좋게 해 봐야 서로에게서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핥을 따름이다. 어떤 흉내나 다름없다.

“그래서, 이대로 죽을 셈인가?” 루이는 가볍게 던졌다.

 

 

갑자기 에단은 루이를 홱 노려보기 시작한다. 이글거리는 눈이다. 네놈은,

내가 참회하길 바라나? 죄를 지었다 이건가? 그 말들은 잇새로 나왔다. 루이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왜 분노하는 거지? 인간에게 갑자기 악령이라도 씌인 것 같았다. 에단은 루이의 손을 매섭게 쳐내더니, 벌떡 일어나 그를 계속 무서운 눈으로 본다. 그게 마치 죽여 버릴 듯도 했다. 숨소리는 더욱 거칠어졌다. “나는…” 루이는 입을 열었다가 가슴을 세게 밀쳐져 벽까지 튕겼다. 인간이었다면 잠시간 숨을 멈췄을 테다.

루이는 (아프지 않았지만) 삐걱거리며 몸을 가눴다. 에단은 스스로도 놀란 듯이 자기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그의 전신을 분노가 사로잡은 것처럼 루이를 쏘아본다.

“꺼져 버려.”

“그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단 건 이해하고 있네….”

“꺼지라고 했다. 빌어먹을 날개를 뜯어 버릴 거야.”

“잠깐, 잠깐만.” 에단은 그 말을 정말 실행할 듯이 다가왔다. 벽에 몰린 루이는 한 순간 낯빛을 바꾼다. 대리석과 같이 뭇 인간으로서는 읽어낼 수 없는 표정이다. 그는 짧은 날숨을 쉬는 것 같더니, 곧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인간의 몸은 붕 뜨고, 바닥에 처박혔다. 진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루이에게는… 개미 다리를 떼어내는 만큼 쉬운 일이다. 천사는 사무적인 표정으로 에단 위에 섰다. 갈비뼈 아래, 명치 부위를 밟은 채였다. 무게는 거의 없을 터다.

“그대에게 정말 그런 뜻은 없단 건 알고 있어.” 루이는 한 손가락씩 겨우겨우 땅에서 떼어 내는 에단의 손을 짓밟는 것처럼 힘으로 눌렀다. 손목이 뒤로 휙 꺾이는 게 고통스러운지 인간은 소리내지 않고 얼굴을 찌푸린다. 지금 놓아 주기에는 곤란했다. 정말로 날개를 뜯겠다고 덤빌지 모르고, 그러면 인간에게는 용서받기 어려운 죄가 더해지는 셈이다.

 

루이는 문득 안타까운 얼굴을 해 보인다. 천사를 패고 날개를 뜯는 게 인간의 기분을 풀리게 한다면—어차피 고통도 느끼지 않는 것, 조금 내어 주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에단은, 사실 그러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결과가 좋지도 않을 것임을 서로 알았다. 그러면서도 내내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들을 망치기 위해. 하루 한 번의 포옹 시간이나, 자잘한 대화나, 죽을 때까지 함께 하리라는 약속 따위는 없는 것처럼. 이를 기억 못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인간은, 없던 일처럼 하고 싶은 것이다. 루이에게 잘못했다고 말하느니.

 

“이건 어때. 내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면 다른 방법도 있네.” 루이는 에단을 땅으로 누르던 힘을 살짝 풀었지만 일어나지는 못하도록 여전히 밟고 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에단은 루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천사가 던져 둔 차가운 땅에 누워 있었다. 루이는 그가 울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방은 버석버석하기만 했다.

 

 

 

 

 

얼굴을 보지 않는 방법이라고. 루이는 에단에게 더욱 가까이 붙어, 그의 어깨 위에 머리를 얹었다. 얼굴만 보지 않는 외에는 전부 가깝고 다정한 몸짓이다.

“하지만 눈을 보지 않아도 되지. 인간들이 이런 편의를 얼마나 오래 써먹었는지 이해할 수 있겠나? 표정을 보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게 말이야.”

에단은 그다지 불평은 않았으나 마주 안아오지도 않고 멈춘 동상처럼 앉아 있었다. 루이는 그의 규칙적인 심장 박동과, 뜨거운 피가 펌프질되어 퍼져 나가는 파동을 느낀다. ………미안하네. 속상하게 하려던 게 아니었어. 그의 빈 날개뼈를 따라 루이는 손을 쓸어 내렸다. 붉고 부드러운 머리칼이 손가락 사이로 샜다. 이 몸이 천사라도 모두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네. 그대만이 알고 있겠지.

에단의 어깨 너머에는 텅 빈 벽이 보였다. 루이는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가 궁금했지만 읽지 않기로 한다. 실오라기 추락하는 소리도 들릴 듯한 정적이다.

“그 때, 하마터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대가?”

“주군이.”

“지키려던 게로군.”

“호의를 이용한 비겁한 함정이었다.”

에단의 몸이 서서히 굳어졌다. 그는 손을 들어 루이의 흰 날개 끄트머리를 살짝 잡아당겼다. 이제 와서 뜯으려는 건 아니겠지. 루이는 잠깐 고민했지만 느껴지는 움직임은 그게 다였다.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나? 그 때 지키지 못했다면. 살아남지 못했다면…. 맹세를 지키지 못한 기사에게 어떤 의미가 있겠나? 에단은 허공을 보고 말을 이었다. 내가 반드시 할 일이었는데, 회개가 무슨 소용인가? 후회는 없다.

“듣기로는 임무를 완수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루이는 자세를 조금 고쳤다. “이제 돌아가면 되지 않나? 그대의 왕자에게.”

 

대답은 즉시 돌아왔다. 마치 질문을 예상이라도 한 투였다.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오히려 그분께 독이 될 테다.” 이제 에단은 무의식 중인지 루이의 날개 안쪽, 보드라운 솜털을 만지작대고 있었다. 막 자라고 있는 부분이다. 게다가, 내 밑에 쓸 만한 기사들이 많았다. 훌륭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한 사람 몫을 하는 정도지. 그들이 나를 대체할 것이다.

“그대의 맹세는 어찌 하고?” 루이는 인간들이 하는 기사의 맹세에 대해 알았다. 에단이 그의 등을 파고들 듯 손톱을 세웠다. 날개는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그의 손아귀 아래에서 뭉그러졌다.

“이게 맹세다.”

그렇지만 그대의 자리는 타인으로 대체되고, 어떤 대가조차 무릅쓰고, 이제 죽는 날만 남은 처지다. 루이는 에단이 이미 이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주군을 지켰고, 적을 죽였지만 이제 그가 돌아갈 자리는 없다. 어쩌면 당당하게 죽는 편이 명예로운 결말일 수 있을 테다. 살고 싶다는 것만 제외하고는.

 

그러나 그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누구를 위해?

그래서 인간은 차마 감옥에서 꺼내지는 것도 원치 않고, 죽음을 하루하루 미루는 감각으로 살고 있다. 그건, 슬픈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대가 다른 인간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사실을 좋게 볼 수 없네.” 루이는 짧게 말했다.

“빌어먹을 천사. 끔찍하군. 남에게 죄책감을 주지 못해 안달이 났지.”

“괜찮아. 나는 그대를 사랑하네. 다른 모두처럼 말이야.” 루이는 에단을 더 꽉 끌어안았다. 따뜻하고 살아 있는 육신이다. 그들은 한참 뒤, 어색하게 떨어질 때까지 어깨 너머로 서로의 눈 아닌 벽면을 바라보았다.

 

 

 

 

 

에단은 그런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가까이 와.’ 같은 것들 말이다. 루이는 인간의 이런 소원을 흔쾌히 들어 주었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던 때보다야 낫고, 또 에단의 어떤 벽을 허문 것 같았다. 여전히 규모나 영향은 보잘것없었지만 말이다.

테오와 준은 몇 차례 더 찾아왔다. 계획은 좀더 구체적으로, 재판 자체를 이길 수 있게 하거나(다만 충분한 준비와 증거가 필요했다. 그러고도 외국인이므로 무거운 형벌을 받을 수 있다.) 혹은 아예 없었던 사람처럼 사라지는 방향으로 좁혀졌다.(이것 또한 대단한 사전 작업이 필요했다.) 에단은 양 쪽 모두에 회의적인 것 같았지만, 준과 루이가 밀어붙이고 테오가 심드렁히 맞장구를 쳐서 그가 어느 한 쪽을 부탁하기만 하면 곧장 실행할 수 있는 정도까지 진행되었다.

 

 

에단은 가끔 루이의 쇄골 옆 움푹 팬 곳에 얼굴을 묻은 채로 의미 없는 말을 하기도 했다. “너한테 나는 향은 뭐지.” 루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무얼까. 아마도 장미가 아닐까?” 장미라니. “첩첩이 쌓인 적색이 이 몸의 미모와 어울리지 않는가? 물론 들판의 장미화에게도 그만의 미가 있지만 말이야. 아름답지 않은가? 그들은 누구도 돌보지 않았는데 홀로 핀다네.” 느하핫! 웃는 소리에 인간은 조용히 루이의 목덜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루이는 에단이 오래 꽃을 보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맞아. 그대에게도 좋아하는 꽃이 있나?”

에단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나도 장미로 하지.” 애초에 꽃 따위에 관심이 없었던 듯한, 적당한 대답이었다. 루이는 대답한다. 역시 인간들이 사랑하는 꽃인가 보군. 그런 쓰잘데없는 이야기들이 지나갔다. 다음 날 루이가 생생한 장미를 선물하니 한구석의 먼지 쌓여 있던 꽃병에 꽂혔다. 지루한 감금 생활에 장미만이 시들 때까지 한동안 살아 있었다.

 

또는 그런 질문이 있다. “간지럼을 타나?” 루이는 침대에 거꾸로 엎어져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이 몸에겐 인간들 같은 신체 기능이 존재하지 않네. 이 모습은 영혼이 투영한 것일 뿐이지.” …하지만 바란다면 해볼 수는 있어. 에단은 해 보라는 듯이 눈썹을 치켜올린다.

루이는 벌떡 일어나 잠깐 눈을 감는다. “음……. 된 것 같네. 간지럽혀 보게.” 에단에게 가까이 가니 그가 떨떠름한 몸짓으로 손을 들었다. 그는 루이의 등을 감싸더니 일전에 만지작대던 날개 안쪽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루이는 갑자기 짜릿한 느낌이 든다. 닿는 부분부터 얕은 전류가 스믈스믈 퍼지는 느낌이었다. 작게 웃음을 터뜨리자 나비 같은 것들이 에단이 간지럽히는 곳으로부터 수백 마리고 날아가는 것 같았다. 아, 진짜 간지럽네! 무언가 아주 새로운 개념을 발견한 것처럼 루이는 외쳤다.

인간은 겨드랑이 쪽의 여린 살이나 들어간 허리까지 가볍게 간지럽히고는 몸을 뒤틀며 깔깔 웃는 루이를 붙들었다. 루이는 하도 웃다 휘청이며 책상 위로 넘어갔고, 그 위에 엉거주춤한 에단을 끌어당긴다.

에단은 왠지 울 것 같다. 너무 우스워서 표정이 그러한가? 루이는 날개로 그를 감쌌다.

 

 

 

 

 

아무튼 그들은 한동안 좋았다.

 

 

 

 

 

 

유난히 날이 좋은 저녁이었다. 해조차 미적미적 낮과 잡은 손을 늦게 놓았다. 그 날은 창 밖에 오물 냄새도 나지 않고 다만 늘상 나는 물 냄새 뿐이었다. 에단은 창 쪽으로 의자를 가까이 두고 노을을 보고 있었다. 아래로 서서히 깔려 오는 보랏빛이 에단의 얼굴에 차츰 그림자를 만들었다. 루이는 에단의 얼굴선을 따라 그림자가 느리게 흐르는 눈물처럼 타고 올라오는 것을 바라본다. 입은 굳게 다물려 있고, 이질적인 눈은 어떤 강한 의지의 반영처럼 정면을 응시한다. 그의 인간은 우주에서 보는 수많은 은하만큼이나 아름답다.

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에단만 그렇다. 루이는 이상한 메스꺼움이 든다. 너무 오래 갇혀 있어 그런가? 에단은 문득 루이를 돌아 보고,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 몸짓은 언제나 거기 있을 것을 아는 것처럼 익숙하다. 루이는 날아가 그의 무릎 위에 앉았다. 에단은 마뜩치 않은 소음을 내고도 루이의 허리를 감싸 왔다. 천사는 지는 노을을 바라본다.

“그대를 빨리 나가게 해 주고 싶네. 벌써 두 달도 넘었지 않은가.”

에단이 입을 열었다. “저 물 너머에 내 고향이 있다.”

“어떤 곳인가?”

인간은 침묵했다. 어느 순간을 떠올리는 모양이다.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성 앞의 나무들이 모두 분홍빛이 되었지. 경계탑 위에 오르면 융단을 깔아 둔 것 같이 보였다.”

“저런 분홍빛인가?” 루이는 손으로 노을 언저리를 가리킨다.

“비슷한 것 같군.” 에단은 색을 일일이 구분하여 명명하는 데에 크게 흥미가 없는 듯 했다. 루이는 새삼스레 불타며 지평선 끄트머리로 사라지는 한 별을 본다. 이런 광경을 만들고 신도 어느 정도 기뻐했을 것이다.

“언제 한 번은 가 보세. 그대에게도 날개가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면 지금이라도 몰래 빠져나갈 수 있네. 루이는 작게 웃으며, 그가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계산해 본다. 날게 하지는 못해도 빠져나가는 일 정도는 가능할지 모른다. 호언장담해 두고 한 번도 쓰지 못한 투명화를 써먹으면 그만이다. 에단도 기뻐할 테다….

루이는 그의 인간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혹시 무거웠나? 아니면 너무 허황된 소리를 지껄였던가? 루이는 무슨 일이냐는 듯 눈을 크게 떠 보였다. 그의 한쪽 손은 에단의 묶은 머리 아래 가볍게 얹혀 있다.

 

 

에단은 천천히, 눈의 먼지를 불어 주는 것처럼 다가와서, 루이의 입술에 가볍게 입맞춘다. 루이는 그의 살짝 감은 눈꺼풀이 떨리는 것을 본다. 천사가 시간을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모든 움직임은 대단히 느린 것처럼 느껴졌다. 숨소리만이 크게 들리고, 눌린 어깨 너머로 들리는 인간의 심장 소리도 그렇다. 닿은 입술은 약하고 부드러웠다.

에단은 금방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너는 표정이 알기 쉽단 걸 알고 있나? 천사들은 본래 그런가?” 낮은 목소리가 물어 왔다.

 

 

루이는, 상황에 맞지 않게, 갑자기 토할 것 같아졌다. 그가 인간이라면 좀더 적절한 반응을 보였을 터다. 하지만 갑자기, 진실로 온 몸이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날개 끝부터가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그는 인간인 적이 없었으므로 어떤 기분이나 증상의 차이를 도무지 말할 수가 없다. 이건, 그건가? 그런 건가? 인간이 방금 키스해 왔다. 천사는 아주 뒤늦고도 천천히, 몹시 아연해하기 시작했다.

맙소사, 신이시여, 모든 게 잘못되었다. 이래서는 좋지 않았다. 좋은 것과 정 반대다. 내가 뭘 한 거지? 내 작은 인간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루이는 잔뜩 겁을 먹고 그 자리에서 에단의 ‘경건함’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수치는…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해도, 훌륭했다.

 

 

 


이제 내용상 절반이 넘었습니다.(써 봐야 알겠지만, 길어도 5편으로 마무리지을 생각입니다)

생각해 보면 굉장히 커플의 진도가 느리게 나가고 있는데……. 혹 답답하진 않으실지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사의 딜레마 4[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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