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픽션이며 실재하는 종교와 어떤 관련도 없습니다.

주의: 상해.

 

커플링요소 없음. 퀸시 <최초의 처음> 카드 스크립트 인용이 있습니다.


 

 

오전 7시 24분 대상 확인. 기존 위치 및 생체반응 대조. 기면증의 일종—혹은 기상으로 판별됨. 이후 관찰은 관절 단위의 미세운동 감지를 기반으로 한 자동위치추적 및 행동분석기의 시험운전이 예정되어 있다. 현재 오류 가능성: 34%. (기기의 오작동은 대체로 대상 주위의 생체반응을 억제함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자동 스캔 중……)

7시 44분 대상은 정기 식사를 위해 격리실 출입문으로 이동함.

8시 13분 식빵 한 봉지와 잼 한 통을 발견. 식사를 시작했다. 분석 결과… 전반적인 건강: 양호. 폭력성 표출 없음.

8시 32분 대상이 통신 기기 사용 후 주변 탐색을 시작함. <음성 녹음 파일 V-00000342>

8시 44분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스캔 결과: 제한 반경 내 생체 반응 없음. 스캔 중……)

 

--<음성 추출 기록 V-00000346>을(를) 재생합니다.--

야. 재미없다. 그만해라. 단체로 숨바꼭질이라도 하냐? 매니저! 약골! 가만, 약골은 대답해 봤자 들리지도 않겠네. … 인간들아! 나 논논 우리 열어주러 간다? 진짜 가는 길이다? 그리고 뭘 할 거냐 하면, 껌을 뱉을 거야. 복도 한가운데에다가! 두렵지 않느냐? … 야, 왕재수! 니 꽁지머리 완전 할머니 같애! 빡치면 나오든지? 푸하하! … 천사 놈아! 야, 나 고함치기 힘들다!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도와주세요 기수장님~ … 다들 어딨냐고! 어딨어! 매니저!

 

--<음성 추출 기록 V-00000348>을(를) 재생합니다.--

어이 유세프! 여기도 없네……. 야! 재미없다고! 재미가 한 톨만큼 있대도 옛날에 끝났다고!

 

(스캔 결과: 제한 반경 내 생체 반응 없음. 스캔 중……)

 

9시 42분 매니저 사무실에 13번째 방문하고 약 7초 후 퇴실.

9시 55분 이상 증상 감지. 대상이 목적 없는 소음을 5.3초간 지속함. 배정된 격리실로 돌아가 같은 자리를 총 55바퀴 돌았다.

10시 21분 전반적인 건강: 양호. (계산 중……)

10시 21분 대상의 폭력성 표출 강도: 초기(진압 가능). 격리실 공간 안정성 확인: 99.78%

10시 33분 움직임을 일시에 정지함. 의자에 착석. 미동 없음.

 

(스캔 결과: 제한 반경 내 생체 반응 없음. 스캔 중……)

(스캔 결과: 제한 반경 내 생체 반응 없음. 스캔 중……)

 

 

 

친애하는 추악한 악마 여러분. 괴기와 타락의 현신이여. 오늘도 파멸하는 더러운 영혼의 소리가 자장가처럼 우리 귓가를 맴돕니다. 부디 그대들의 없거나 많은 눈구멍, 그리고 귓구멍을 잠시 저에게 빌려주시지요. 자아, 녹아 내린 뇌가 전하는 오늘의 비밀입니다….

휴거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아, 몇몇 분들이 웃으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일부 인간계 묵시록의 일종에서 전해져 오는 휴거의 계시는 본디 우리 악마들에게 그다지 상관할 바 없는 내용이지요. 수많은 종말-농담 중에서도 이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을 정도입니다!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왜냐하면 휴거란 이른바 선한…(구역질 소리) 인간들이 받는 보상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해당 묵시록 사본에 기록된 바, 그 날은 인간계 종말의 시작입니다. 실은,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요.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종말의 네 기수들, 풍요로이 흘러 넘치는 피의 강, 동족상잔과 전쟁, 식인 따위의 즐거운 부분은 조금 뒤에 일어날 일입니다…(한탄하는 한숨 소리) 바빌론의 여왕께서 그 세력을 잡으며, 수많은 적그리스도들이 멍청하고 벌레와 같은 인간을 계도하여 우리 마계 인구 수를 늘리고 있겠지요. 늘어 봤자 무얼 하냐고요? 글쎄요, 머리 차기 축구 대회에서 차고 다닐 머리가 늘지 않겠습니까?

휴거의 날에는 ‘선택 받은’ 선한 인간들이 모두 하늘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이 참에 대기권 밖으로 벗어나서 뻥 터지는 것도 흥미로운 볼거리일 텐데요.(웃음 소리) 그렇지만 하늘로 올라간다는 말은 비유적인 표현일 따름으로, 아마 신이란 작자는 그들을 위한 대체-현실을 만들 작정인 듯합니다. 우리가 고매하신 신의 속내에 대해 무얼 알겠습니까? 아무튼 어떤 주장에 따르면 이는 전 인간계 중 십 사만 사천 명이라 하고, 또 다른 말에 따르면 소위 ‘그리스도 살해자’ 족속 중에서만 십 사만 사천 명이 선택된다고도 합니다. 사실, 이들에게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선한 인간을 어떻게 하려는 건 시간 낭비예요. 선한 인간은 끔찍하게 지루하고 꽉 막힌 데다 자기들이 대단한 줄 알죠. 저희가 그들을 타락시키면 그들은 호들갑을 떨며 이러겠지요. “어떻게 이럴 수가…!” 어떻게 이렇긴요. 세상에 자기 하나만 선했을까요?

그들이 사라진 세상으로 말하자면, 여기서 바로 우리 악마들이 주인공처럼 등장할 차례지요. 신은 이 때부터 인간계에 손을 떼기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그가 사랑하는 소수만을 따로 피신시킨 채 말이지요. 남은 인간들에게는 순수한 절망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준비한 작고 따스한 집들이 선물이지요. 하루아침에 인간 일부가 사라지고 나서 남은 이들은 깨닫겠지요. 오늘이 그 날이었다는 것을요. 어쩌면 그들은 사라진 사람을 사랑했을지도, 그들의 선함을 증오했을지도, 지겨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제 영영 남은 자의 지옥이 펼쳐진다는 건……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종말, 유쾌한 종말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세계입니다!

 

 

 

 

퀸시는 오랫동안 벽을 보았다. 그럴 리가 없지. 짤각짤각 소리가 계속 났다. 짤각짤각. 짤각짤각. 그것이 스스로 다리를 떠느라 나는 소리인 줄 미처 깨닫기 전에 어떤 기척이 느껴졌다. 아침 내내 찾았으나 조금도 느껴지지 않은 기척이었다. 퀸시는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좀아까 깨부순 주전자 탓에 바닥이 엉망이었다. 누구야! 퀸시는 사기가 바닥을 긁듯이 소리친다. 그것은 벽 뒤에 숨어 있다가 낮은 웅웅거리는 소리를 냈다. 멀어지는 존재를 퀸시는 부리나케 쫓는다. 어쩐지 지부 인간이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으나 아무도—무엇도 찾지 못한 채 두 시간. 퀸시는 시계토끼라도 쫓을 수 있었다.

코너를 도니 멀리 거대한 후추 통 끄트머리 같은 게 슬슬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퀸시는 너무 속력을 내 거의 벽과 충돌하려던 걸 간신히 몸으로 받고 추격을 계속했다. 멈춰! 멈추라고! 그러나 상대는 듣지 않았다. 그러나 퀸시는 전속력으로 달렸고, 그대로라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도망가던 것을 거의 들이받을 뻔하며 포획했다. 하마터면 같이 굴러 몽땅 부술 뻔했다. 그러니까… 그 로봇을 말이다.

 

뭐야 넌?! 퀸시는 큰 소리로 외쳤지만 기계는 음성 기능까진 달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것은 바닥에 달린 빗자루 같은 것을 움직여 도망치려 했지만 퀸시는 제법 묵직한 원통형 몸체를 들어 그대로 뒤집어 버렸다. 그러고 나니 기계는 거북이처럼 버둥거리는 꼴이 되었다. 퀸시에겐 아무 상관 없었다.

기계 외부에는 렌즈가 일곱 개 정도 있고, 얇게 새겨진 홈이 교차하면서 기하학적 무늬를 만들었다. 퀸시가 알아볼 수 있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모델명 따위가 적혀 있을지 구석구석 찾아 보니 바닥 쪽에 어느 하나 패이거나 비뚤어진 곳 없이 깨끗하고 네모진 각인이 보였다.

“어디 보자, 관절 단위의 미세운동 감지를 기반으로 한…… 이 쪼그만 데 글자를 참 많이도 욱여 넣어 놨다. 시릴 네놈이냐?” 퀸시는 로봇을 윽박질러봤지만 그것은 퀸시의 탐색과 관계 없이 잠깐 작동을 중지하듯 스르르 멈추더니, 곧 바닥에 달린 빗자루를 항복 깃발마냥 일없이 흔들어 볼 뿐이었다. 퀸시는 어이가 없고 갑자기 발바닥이 따끔거렸다. 뭔가 뜨거운 것에 닿은 것 같았다. 주저앉은 채 다리를 살펴 보니 작은 사기 조각이 박혀 있었다. 방에 있던 주전자 조각인가 보다.

 

시릴의 로봇은 있는데 시릴은 없다. 퀸시는 아픈 걸 참고 조그만 머리를 굴려 봤다. 몰래카메라인가? 허, 참. 어이 없네. 뭐 부술 때 그만둬야 했던 거 아냐? 아니면 주방 케첩을 모조리 핫소스로 바꿔 놓을 때? 아니면 모든 천장에 신발 자국을 남길 때? 나 빼고 다 숨고, 참 일도 안 하고 잘 논다. 이게 웃겨?

이게 웃기냐고. 퀸시는 문득 소리내어 말해 본다. 생각해 보니 그날도 정화 업무가 있었다. 퀸시는 발바닥에 박힌 작은 사기를 단숨에 뽑아 버리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여전히 바둥거리는 로봇을 내려다본다. 그것은 일곱 개의 렌즈를 왱왱 돌리며 퀸시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알았다, 알았어. 퀸시는 기계를 똑바로 세워 준다.

 

 

 

 

(스캔 결과: 제한 반경 내 생체 반응 없음. 스캔 중……)

 

 

 

 

포탈 구역 입구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했지만 퀸시에게는 이제 목적지가 있다. 뒤를 돌아보니 관절…… 어쩌구 로봇이 따라오고 있다. 돌려놓자마자 후다닥 도망가기에 먼 데라도 가나 싶더니, 퀸시는 무시하기로 한다. 입구는 잠겨 있다.

“하지만 사감에게 열쇠가 있고, 그 열쇠는 나한테 있단 말씀이지.” 퀸시는 혼잣말을 지껄여 본다. 그의 말이 빈 복도에 텅텅 울렸다. 본래 그렇게 말소리가 울리는 줄은 몰랐다. 그 뿐인가, 벽에는 약간씩 금이 가 있고 반대쪽 벽까지 떠도는 환한 공기 속에는 먼지가 나풀댔다.

퀸시는 이제 무언가 나타난다면 이상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사신들은, 퀸시가 이렇게 찾았는데도 어련히 보이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분명 다들 포탈 너머에 있을 것이다. 무언가 위급하고 붙들려 있을 만한 일이 있는 게 틀림없다. 그러니 이제 지부 안에 있는 건 무언가 상냥하지 않은 것들이겠다. 누구도 찾지 않은 것. 혼자가 될 때까지 어딘가 침대 아래 혹은 장롱 문 틈에 숨어 있다가, 적막 속에서 등장하는 것들.

 

끼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퀸시는 빠르게 열쇠를 꽂았다. 맞는 방향으로 돌렸는데도 문은 열릴 기미 없이 불통이었다. 퀸시는 열쇠를 준 손에 힘을 주며 부술 듯 찰칵찰칵 돌려댔다. 나무 그림자가 퀸시의 뒤에서 흔들려 손가락 같은 것을 만들어냈다. 어딘가 걸려 막힌 듯하던 열쇠는 열몇 번째나 돌리고 나서야 기어이 뚫렸다. 퀸시는 포탈 구역 안으로 뛰어들고, 문을 쾅 닫는다.

 

 

 

(스캔 결과: 제한 반경 내 생체 반응 없음. 스캔 중……)

 

11시 08분 이동 중. 대상은 경미한 치료가 필요함.

11시 12분 대상이 포탈 구역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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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ROR--!>

 

(스캔 결과: 제한 반경 내 생체 반응 없음. 스캔 중……)

 

 

 

포탈은 작동하지 않았다. 퀸시가 매니저나 시릴을 흉내내어 아무리 무슨 버튼을 누르고 스위치를 딸깍거려도, 조명을 제외한 그 방의 어떤 것도 뜻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마치 퀸시를 비웃는 것 같았다. 그렇단 말이지. 퀸시는 포탈 가장자리를 (사기조각이 박히지 않은 쪽) 발로 차 본다. 경쾌한 퍽 소리가 났고, 퀸시의 발등만 아파졌다. 근처에는 딱히 바보 같은 짓을 비웃을 사람이 없었지만 퀸시는 꽥 고함을 질렀다. 엿 같은 포탈! 필요할 때만 안 돼!

 

이 쪽에서 열 순 없어도 나오는 사신들을 기다릴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닿은 건 조금 뒤였다. 물론… 그들에게선 어떤 말도 들은 바가 없지만……. 퀸시는 주저앉는다. 포탈은 휴면 중인데도 미묘한 소음을 냈다. 공간이 공간과 맞닿으면서 생기는 잡음 같은 것이다. 퀸시는 마계 경계를 넘을 때 들은 적이 있다. 다른 게 있다면 그 때 들었던 소리는 고막을 넘어 뇌까지 파고드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텅.

문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포탈 밖은 아니다. 퀸시가 막 들어와 닫은 문이었다. 뭐야. 퀸시는 무시하려 했다.

텅. 텅.

소리는 노크를 하듯이 몇 차례 이어졌다. 아, 그 놈의 시릴 로봇인가 보군. 왜 따라와? 할 짓도 없나? 주인 불러오라 그래. ……아아, 일단 부숴 버리면 헐레벌떡 달려 오려나? 퀸시는 그러나 너드 자식이 어마무시한 금액을 배상으로 청구할 거란 생각이 들고 만다.(벌써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문에 자기 몸을 들이박는 듯한 소리가 끝도 없이 이어지자 퀸시는 무시할 수가 없어졌다. 간다, 가! 퀸시는 반가운 손님을 위해 현관문을 열어 주듯 출입문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에 가까이 가자 텅, 텅, 하던 소리가 뚝 그쳤다.

 

조용하다. 퀸시는 오만상을 찡그리며 문고리를 당겨 묵직한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복도 끝까지 텅 비어 있다. 멍청한 건물. 멍청한 문 같으니. 퀸시는 몇 발짝 나오고 문을 퍽 소리 나게 닫았다. 싸늘한 바람이 퀸시의 뱃가죽과 어깨의 여린 부분을 지나쳐 우글우글한 자국을 남겼다. 타인이 없는 텅 빈 곳마다 저마다의 무게를 가져 사람을 짓누르는 것 같다. 퀸시는 복도를 가로지르며 발소리를 죽였다. 마치……

 

무언가가 존재하는 듯한………. 두 번째 코너 오른편에 엎어진 기계가 있었다. 퀸시는 기계를 바로 세우고 자기 방으로 종종걸음쳤다.

 

 

 

 

 

가끔 퀸시는 휴거에 대해 생각한다. 일어났는데도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방에서 나왔는데도 맞아 주는 사람은 누구도 없고 서늘한 정적만이 감돌 때. 누군가가 최근까지 존재한 흔적은 있지만 그는 간 데 없을 때… 어쩌면 이것은 휴거일 것이다. (이 사고에 개연성은 그다지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인간계의 묵시록이 명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는지 따위의. 다만 퀸시의 뇌리에 남은 것은 신이 부를 때 선한 인간이 모조리 받들려 사라진다는 것뿐이다.) 심장이 꽉 조여올 때쯤 뒤에서 베린이 “길 막지 말고 비켜.” 캘룩거리거나 모리가 “좋은 아침입니다.” 하는 것이다.

악마는 휴거에 대해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 휴거란 선한 사람(구역질 소리)의 일이다. 가능성 있는 이들이나 그곳의 주거나 복지 환경이 어떨지 고민할 수도 있겠다. 퀸시는 날 때부터 스스로가 악마임을 알았다. 마계에서 스스로 발생한 존재. 퀸시의 유전자 하나하나를 구성하는 게 있다면 순수한 악의나 추악하고 질척대는 질투 따위일 것이다. 그러니 신이 손수 뽑을 대단하신 명단에 들어갈 이유가 없고 용의조차 없었다. 퀸시가 할 일은, 남는 것이다. 남아서 선한 이들이 하나도 없는 종말을 만끽하는 것이다 환상적이지 않은가요?

 

 

 

 

 

퀸시는 어찌어찌 자기 방까지 돌아왔다. 깨진 주전자가 (치우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나뒹굴고 있었다. 그는 소파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서 방을 한 바퀴 돌았다. 최대한 사기 조각을 밟지 않으려 하는데도 발 밑에서 와작와작 소리가 났다. 깨진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버리지 않는 한 여전히 퀸시의 것이다.

퀸시는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몸을 휙 돌렸다. 그는 여태 한 차례도 울리지 않은 휴대전화 단말기를 벽에 집어던졌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전화기가 벽으로부터 힘껏 튕겨 나왔다. 퀸시는 그치지 않고 소파에 있던 쿠션을 던지고, 소리가 내키지 않자 탁자의 과도를 들어 쨌다. (퀸시는 쿠션 안에 그런 내용물이 있는 줄 처음 알았지만 사실 알 바 아니었다.) 수 분 안에 퀸시의 힘으로 들 수 있는 물건은 모조리 던져지고, 칼로 그을 수 있는 것들은 다 찢겼다.

 

그러고 비명을 질렀다. 짧은 비명이다. 퀸시는 숨을 몰아쉰다. 갈비뼈가 아프고 땀이 줄줄 흘렀다. 주위는 거대한 상어가 난동이라도 부린 모양새였다. 꽃병에 있던 물이 아무렇게나 쏟아져, 바닥의 나뭇결 사이로 느리게 퍼졌다.

 

선한 자가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건 바로 그곳이 마계라는 뜻이다. 퀸시는 마계의 주인이 될 것이므로, 이 지부 또한 그의 소유이다. 발 아래 있는 모든 난장판이 그랬다. 퀸시는 모두 부숴 버리고 싶다. 난 아무 것도 안 무서워! 그는 대상을 상정하지 않고 고함을 지른다. 나는 빌어먹을 대악마라고! 오던가! 와서 삼켜 보던가!

그렇지만 침대 밑이나 옷장에 숨어 있는 어떤 어두운 존재도 나오지 않는다. 깨진 창문에서 바람이 휙 불어 얇은 커튼이 흔들렸다. 퀸시의 정신은 커튼과 같이 흩날리고, 흔들리고, 꺾여서…

 

 

 

 

(스캔 결과: 제한 반경 내 생체 반응 없음. 스캔 중……)

(스캔 결과: 제한 반경 내 생체 반응 없음. 스캔 중……)

 

 

 

 

매니저에게 희망을 걸고 있진 않다. 그녀는 여러모로 과한 인간이다. 어쩌면 리히트는…… 그는 일을 한 번쯤은 그르칠 것 같은 인상이다. 아니, 하지만 대단히 나쁜 짓을 할 것 같지도 않았다. 기이는 어떤가? 그 후회와 체념… 퀸시는 악마 가운데서 본 적 있다. 위선자와 군인들. 오랜 죄인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을 본 적이 있다.(게다가 화분 하나를 위해 사람을 제물로 바치려고 한 인간이다!) 하지만 퀸시는 콜로세움에서 보이던 얼굴을 떠올리고 만다.

생각해 보면 베린은 진짜 나쁜 것 같다. 룸메이트라서 잘 안다. 다른 사람은 봐 줘도 걔는 절대 선한 인간 아니지. 한 번은 퀸시의 등 뒤에 대고 죽으라고 저주한 적도 있다. 게다가 툭 하면 자기는 죽어간답시고 남한테 뭘 시켜댄다. 시릴 그 자식도 오만하기 그지없다. 그 놈은 천계에 가도 모든 게 자기 성에 안 차고 개선이 필요하다 종알대다가 쫓겨날 인간이다. 만인의 생이 눈 앞에 훤히 보인다는데 오죽하겠는가? 퀸시는 카티가 아무 잘못 없는 지나가는 엘의 발을 걸고 깔깔대는 걸 본 적도 있다. 땅꼬마는 고작 자기 헤드셋 하나 부쉈다고 플라스틱 컵을 던졌다. (왕재수의 놀랍고 추악한 악행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싶으나 지면이 모자라 생략하기로 한다.)

 

 

느슨한 빛이 잔해가 만든 제국 위에 걸쳤다. 퀸시는 왕처럼 앉아 떠올린다.

 

 

그 날은 숙소를 소개해 주던 유세프가 처음으로 따듯한 코코아를 타주던 날이다. 그는 벌레를 벌레답지 않게 취급하는 사람이다.

또 아주 추운 날 폭리를 취하며 열선 자릿세를 받던 모리가 몰래 핫팩 하나를 소매 속에 넣어주던 일.(“빚을 지워 두면 좋으니까요.”)

부순 헤드셋을 고쳐 두고는 네가 직접 주라며 건네던 이의 얼굴이 어땠지? 더없이 부드러운 눈빛을 하고 텃밭을 보던 제이미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도 척척 반을 나눠 내밀던 준이나, 그의 뒤치다꺼리를 군말없이 하던 테오도 기억이 났다. 기이는 심지어 말도 않는 식물조차 그렇게 아끼던 사람이다. 면전에 욕을 퍼부어도 슬며시 웃던 노아는… 떠올려 보면 정말 이상했다.

또 매일 빵을 바치랬다고 울먹이며 정말 바치는 데이나, 아무 것에나 놀라고 감동하던 아이타치 같은 인간은? 나인은 (스스로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조금도 바뀌어야 할 구석이 없음을 다 알았다.

울적해 보이는 매니저에게 나지막히 현악기를 연주해 주던 리히트도 떠올랐다. 어떻게 그 멜로디가 그렇게 오래 머릿속에 남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리고 퀸시는 베린이 마땅찮은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일도 떠올린다. “악마도 병에 걸리네? 놀랍다.” 너한테 옮았잖아. 멍청아. “나한테 뭐가 옮았는데? 이거 다 옮으면 너 죽어.” 꺼져. 좋아, 아주 멋지네. 우리 둘 다 환자야. 누워 있으니 베린이 고통스러운 기침 소리를 내며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퀸시는 공연히 시비를 걸었다. 약골. 어디 가냐? 병자랑은 못 있겠어? “너 물수건 가지러 간다.”

수건은 차가웠다. 퀸시는 말했다. 넌 친구 아주 없는 것 같진 않다. “칭찬인가.” 야, 내 말은. 넌 여기 사람 같다고. 베린이 창백한 하늘색 눈을 가늘게 떴다. 퀸시는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어서 사실 무슨 말을 주워섬기는지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람들 진짜 싫어하지도 않잖아. “아닌데. 완전 싫은데. 특히 넌 진짜 싫어.” 기침 소리. 근데 왜 도와줘? 너 좋아하라고? 나도 약골 너 안 좋아할건데. 베린은 갑자기 피식댄다. “뭐. 수건 던지던가…….”

그렇지만 퀸시는 수건을 던지지 않았다. 베린은 식은땀을 대충 닦아주더니 햇살 아래 꾸벅꾸벅 졸았다. 환자가 환자 간호하는 꼴이네. 어이없어.

 

 

뭔가 잘못된 건 퀸시뿐이다. 퀸시는 베린이 비척비척 다니던 길을 보고, 유세프가 차곡차곡 정리한 책 더미(이제는 의미 없는 종이뭉치가 되었지만)도 보고, 모리가 그 앞에서 꼭 까치발을 들던 일도 기억한다. 풍경은 점점 흐려져서 김 서린 창문같이 보였다. 퀸시는 울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건 눈물이 아니다. 퀸시는 빌어먹을 청승 떨면서 울고 있는 게 아니었다. 어차피 그게 아니라고 말할 이도 없다.

 

 

 

퀸시는 어느 순간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자세히 듣지 않으면 모를 중얼거림이다. 말에는 힘이 깃들어 있어, 생명이 없지만 살아 있다. 악마조차 그 힘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돌아올 거야. 돌아올 거야. 나한테 돌아올 거야. 꼭 돌아와야 해. 바람인지 저주인지 모를 말이다. 바람이라면 악의적이고 저주라면 약했다.

손 하나가 퀸시의 어깨에 얹혔고 퀸시는 순간 꿈을 꾸는 줄 알았다.

“…시!”

뭐, 어, 그, 퀸시는 하마터면 그 약한 손길에 뒤로 넘어갈 뻔했다. 눈물이 데굴데굴 굴러떨어지고 나니 매니저의 얼굴이 보였다. “괜찮아? 다쳤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뒤쪽에서 사신들이 제각기 밀려 들어왔다.

미쳐서 환각도 보는 건가. 퀸시는 이만 몸을 말고 오래 잠들고도 싶었지만 매니저가 단호하게 퀸시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 옆에서 베린이 한쪽 무릎을 굽혔다.

 

퀸시는 하는 수 없듯이 말한다. 나는 최악이야. 그건 아닐걸. 아까 그놈들에 비하면 예뻐 보인다. 베린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가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퀸시가 생각해 보니 사신 지부에서 마계에 떨어질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일은 지지리 못 해도, 종말이 오기 전에 신이 대충 불러모을 만했다. (오지 않는 종말이라도 어쨌든, 이는 자격의 문제이다.) 퀸시 혼자만 남는 게 당연하다. 본래 악하고 낮은 곳에 속한 악마이므로.

그런데도 퀸시는 어떻게든 사신들이 조금이라도 죄를 지은 구석이 있다고 매도하고 싶다. 그들이 절대 선한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어쩌면 퀸시와도 비슷하다고 꾸역꾸역 우기고도 싶었다. 그들이 살아간 곳은 모조리 망가뜨려 버리고 말겠다.

다 엿같이 잘못됐다는 걸 안다고. 역겨운 생각인데, 그런데 멈출 수가 없어. 나는 너무…….

너무 불안하니까. 선한 인간들이 가 버리는 게 참을 수가 없으니까. 내 비참함과 절망에 누군가 끼길 바라. 차라리 모조리 잘못됐으면 좋겠어. 매니저는 손수건을 꺼내 퀸시의 뺨을 닦는다. 흰 면이 순식간에 축축해졌다. “진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

퀸시는 그렇다고 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단어 그대로 폐기물로 가득 찬 방 한가운데 있었다.

 

 

 

 

매니저는 퀸시가 흐느낌을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 주고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 날은 어느 악의를 가진 마물이 일을 벌였는데, 지부에 있던 전원이 꼭두새벽에 모두 바깥 숲으로 쫓겨났다는 (생각보다 평범한) 얘기였다. 준을 제외하고는 취침 중에 벌어진 일이라, 대부분 전투 준비도 변변찮아 초반엔 우왕좌왕했다고 했다. 야외엔 마물들이 득실댔고, 각개전투를 벌이다 보니 대강 물리치긴 했지만 결계를 해제하는 게 늦어졌다. 퀸시는 마물에게 잡힌 줄 알았지만 처음부터 튕겨 나가질 않은 거였다. 그래서 사신들이 이제서야 찾아낸 것이다.

한구석에서 로봇이 엉망인 바닥 위를 빨빨거리며 올라왔다. 시릴이 그걸 알아보고 아는체했다. “그새 조이도 만났네? 우리 애, 훌륭하지?” 무엇이 훌륭한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아서 설명할 터였지만 퀸시는 힘없이 툭 뱉었다. 뭐 하는 거였는데.

 

그건 말이지, 비상 상황에서 사신들의 바이탈을 체크하고 생존을 위한 서비스를 지원하도록 되어 있지. 기본적으로는 의료…… 루이가 막 떠드는 시릴을 가리며 달려왔다. “그대! 살아 있었군!” 그리고 퀸시는 왕자의 활짝 벌린 품 안에 갇혔다.

“……이거 이상해. 나 왕자 진짜 혐오하거든. 근데 포옹하는 느낌은 죽여준다. 좋은 냄새 나고 푹신해.” 퀸시는 중얼거렸다.

“14지부 불가사의 중 하나지. 요란한 주둥이가 달린 곰인형 같아.”

“루이가 듣고 있네만.”

루이 옆에서 매니저도 퀸시를 끌어안았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퀸시는 숨이 조금 막혔고 베린과 눈이 마주쳤다. 반가운지 떨떠름한지 여전히 스스로의 기분을 알 수가 없었다. 사신들이 엉망이 된 방에서 위험한 물건을 대강 쓸어내는 게 보였다. 가장 분명한 느낌은, 드디어 그들을 찾았다는 안도감이었다. 아니, 그들이 퀸시를 찾아냈다. 우스운 일이다. 만약에 퀸시가 엄정한 신의 심판대에 검사로 선대도, 모두를 선한 인간이라 증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오늘과 같은 결과를 바꿀 수가 없다. 모두는 들려 가고 퀸시만 혼자, 그들이 살았던 세계에 남아 버릴 것이다. 어떻게 그 날이 올 줄 몰랐는지 영원히 곱씹을 테다. 어떻게 그들을 사랑하고 증오했는지. 그들이 악마에게조차 얼마나 선한 인간이었는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러니 퀸시는 차라리 이렇게 속삭여 주기 바란다. 휴거 같은 건 평생 일어나지 않을 일이야. 영영 떠나지 않을게. 만약에 떠나게 된다면, 작별인사를 할 거야. 거짓말이라도 돌아온다고 약속해 줄게. 달콤한 말들을. 그러면 놀랍게도 악마는 거짓말을 믿을 것이다. 웃으면서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만다.

퀸시,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지금부터 먹으러 가자. 매니저가 묻는다. 퀸시는 남은 눈물을 닦고 멍해진다. 먹고 싶은 거.

 

어, 치킨. 엄청나게 매운 걸로.

그래 그러면. 치킨 시켜 먹자. 그녀의 목소리는 퀸시를 어딘가 땅에 단단히 고정하는 것 같다. 준이 환호성을 질렀고 루이가 서서히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퀸시는 비죽비죽 웃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해피엔딩을 내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자

되도록 비속어를 쓰지 않으려 노력함 참으로 많은 욕을 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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