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입 이벤트 태양의 왕국, 특히 에단 SSR <기사의 심장> 루이 SR <심연>의 중대한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해 주세요!
그래 요즘은 어떤가, 하고 사감이 말을 걸었다. 에단은 의무실의 서늘한 공기가 그와 저 사이에 가로놓여 말을 천천히 분해할 때까지 기다린다. 그는 사감의 우측, 얇은 커튼 한 장이 가르는 너머에 자신의 침상이 여전히 놓여 있을 것임을 짐작했다. 그 자리는 조금 친숙하면서도 이 자리에서 보니 자신과는 더이상 관계 없어 보였다. 누운 채의 특정한 각도에서만 보이는 풍경. 천장. 그가 짐작할 수 없고 흥미를 가질 필요 없는 발소리들. 그곳을 떠나 걸어나가도 된다고 승인한 이가 사감이었으니, 에단은 속으로 짐작해, 손가락과 다리, 눈꺼풀 따위를 움직이고 걸으며 뛸 수도 있으니 아마 괜찮으리라는 답을 냈다. 그러나 이는 피차 아는 사실이므로 입을 열 필요가 없었다. 에단은 되물었다.
건강에 대해서라면 그쪽이 더 잘 알 텐데. 사감은 감흥 없는 얼굴로 펜을 딸깍인다. 그렇지.
에단은 의자 뒤로 등을 기댔다. 그러면 다른 상담이로군.
♣♣♣
루이는 매니저실의 푹신한 소파에서 그녀가 흥얼거리는 멜로디를 듣는다. 그건 이어지지 않고 같은 구간―아마 가장 멋진 구간을 맴돌았다. 몇 가지 수습해야 할 일이 있다기에 기꺼이 기다리던 참이었다. 그동안 루이는 테이블에 놓여 외면받고 있던 꽃다발에 생기를 주고, 너저분한 책상을 뒤적대고, 지루한 방을 화사하게 만들 꽃잎을 뿌려 두었다.(“루이! 그거 치우고 나가!”) 마침내 매니저가 몸을 일으킬 때 루이는 우아하게 손을 내밀었다.
와, 고마워. 이런 건 다들 어디서 배워 오는 거지. ‘이런 것’의 뜻이 에스코트 매너라면 어떤 그녀는 슬슬 익숙해질 법도 했다. 그러니까, 모두가 자신에게 어떤 인상을 주려는 데에. 보통 할 말이 있는 쪽은 루이였으나 매니저가 먼저 할 말이라 하면… 역시 이 몸에 대한 찬양시 헌정인가? 루이는 부드럽게 뒷걸음질하며 눈웃음쳤다. 왕자로서 타고난 것 아니겠나? 새삼 반했군 그래.
매니저는 루이에게 보이도록 눈을 굴리더니 그가 있던 곳 옆자리에 앉았다. 그냥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따라 무릎을 굽히던 루이는 웃기로 했다. 언제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중이지.
“어, 그건... 수고가 많네. 나는 그냥, 임무 다녀온지도 좀 되었고 하니까.” 매니저는 가벼운 태도를 해 보이려는 것 같았다. 태양의 나라. 하마티아의 황금 궁전을 루이는 물론 기억했다. 어느 경전에 따르면 천국에 황금 기둥으로 만들어진 황금 집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곳이 천국과 가까웠냐 하면은 아니었다. “잠은 잘 자는 편이야?”
잠이라. 루이는 이 미모를 유지하는 비결이 무어라 생각하나? 따위 유쾌한 대답을 하려다 눈을 깜빡인다. 매니저룸의 시계가 당황한 듯 뒤늦게 똑딱이는 소리를 냈다. 그녀를 즐겁게 하거나 안심시키기도 왕자의 일이겠으나…
루이는 누운 채로 천장이 어슴푸레하게 형태를 갖추면 빈 침대 쪽으로 몸을 돌아눕곤 했다. 그러면 잘 개어진 이불보가 눈에 들어오고―본래는 죽은 듯이 잠든 룸메이트가 있어야 했지만 그는 치명상을 입고 회복 중이니 루이가 거기 홀로 있는 게 당연했다. 그러면 생각은 어쩔 수 없이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와인의 신맛 따위로 넘어가고,(결국엔 왕자님의 그 잘난척이 당신을 무너뜨릴 줄 알았습니다.) 어둠이 서서히 녹아내려서 아무 것도 없는 상태를 드러낼 때 그의 정신은 얇고 흐늘흐늘했다. 다시 한 번 일어서야 할 때면 반드시 질 것처럼. 그건 말도 안 되지. 루이는 감옥 창살 너머로 말을 건다. 두 번째 창살이다. 모름지기 두 번쯤 하면 반드시 처음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고 왕궁 선생들이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감옥은 어디서건 루이를 따라온다. 뼈를 스미는 냉기를 느끼고자 하면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한 나라의 왕자는 그렇게 약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누운 몸은 물 먹은 것처럼 침대 아래로 가라앉고, 서너 시즈음에 준이 일어나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릴 때면 조금쯤 안심하며 담요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
“온갖 이들이 왔다갔다하는데 제대로 잘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사람들이 때를 정해 일을 만드는 건 아니니까. 사과하지.” 그러고 사감은 종이에다 무언가 휘갈겼다. 어떻게 지내냐는 상투적인 근황이나 물으려 부른 게 아니라면 어떠한―평가일텐데, 에단은 사감을 건너다본다. 그렇다면 자신은 정답(혹은 그에 준하는 것)을 찾아야 하는가.
얼마 전에 방에 복귀했지 않나. 적응은 어떻나?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독방으로 바꿔 주기라도 할 텐가.” 세이 사감은 낮은 코웃음 같은 소리를 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생각해 봐야겠군.
의외의 대답이다. 물론 루이 같은 인간과 룸메이트를 하는 게 썩 유쾌한 일이 못 된다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지만, 이전 룸메이트 바꾸기 소동을 치른 뒤로는 ‘본래 저렇지’ 따위 대우를 받던 차였다. 이제 와서 독방으로 바꿔 준대도, 죽다 살아나서 특별 대우를 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무슨 대수로운 일인 것처럼.
에단은 루이가 문고리를 잡던 일을 떠올린다. 귀환 허락이 떨어진 날, 의무실까지 얼마 되지도 않은 거리를 마중씩이나 나와서 함께 돌아간 길이었다. 언제 갈았는지 가물가물한 디퓨저와 실내 식물을 지나면 금방 그들의 방이다. 어서 오게. 루이의 들뜬 목소리 너머로 에단은 불이 켜진 방 안을 한 번 돌아보고 짐을 풀었다. 반들반들한 거울 외에는 예상한 대로 무엇이건 치워지지 않아 엉망이고, 자기 침대에는 이불이 개어져 있었다.
그 어서 오게 하는 말이……, 에단은 사감에게서 눈을 돌려 한구석의 펜통을 바라본다.
♣♣♣
그 때 말야. 매니저가 문득 입을 연다. 너희가 포탈로 귀환하고, 다들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걸 봤을 때… 손끝부터 차가워지더라고. 내가 괜찮다고 한 일인데. 순식간에 최악을 상상하게 돼. 내가 없을 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나 하고…… 다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지만. 루이는 감옥에 갇혔다며? 나도 놀랐는데, 루이는 괜찮을까 싶어.
루이는 그녀의 어깨에 천천히 손을 올린다. 그대가 걱정하지 않도록, 앞으로는 아무 일 없게 하겠네.(그가 장담할 수 없는 일에 루이는 진심을 담곤 했다.) 매니저는 “내가 할 일을 없애진 마?” 하고, 장난스럽게 허리를 찔러 온다.
어떻게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나… 루이는 허물어지는 아버지와 그리고 몇 걸음을 남겨둔 왕관을 생각하고, 또 높이 치켜올려진 단도를 떠올린다. 누구든 정해진 순간을 되돌리기 위해 사신이 되었을 테다.
♣♣♣
“질문을 몇 개 하지.” 에단은 사감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고 말을 이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나?
불쾌한 질문이다. 에단은 자리를 박차는 대신 짧게 대답했다. 사감은 기껏 얻어낸 답을 받아적지도 않고 펜을 입가에 대었다. 그러나 실제로 자기소멸을 시도하지 않았던가?
“정황상 옳은 선택이었다. 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같은 선택을 하겠지.” 자기 의지를 붙잡지 못하거나 쉽게 공포에 사로잡히는 이들의 생각이야 에단의 알 바 아니었다. 임무를 최우선에 두지 못했다면 자신조차 결국 잃었겠지만 그는 다르다. 때가 되면 망설임없이 행할 수 있어야 한다.
“목숨을 잃는 일을 고결하다고 생각하는 게 좋은 기사의 자세인가?” 벌써 세 번째 질문이다. 에단은 달리 비꼬는 투를 읽을 수 없었으므로 단지 제대로 살아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태를 위해 무엇이든 유예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생각한다. 어쨌건 그는 사신으로서 자기 삶을 산다고 할 수도 없었다. 하나의 염원을 위해. 모두가 그렇게 일하고 있지 않은가?
다가오지 마, 에단은 검을 치켜든 스스로를 본다. 자신의 힘이라면 심장까지는 빠를 것이다. 고통이 없으리라곤 확신할 순 없지만, 다가올 고통을 두려워할 때는 아니었다. 나의 안위는 항상 부차적이므로. 죽음의 신마저 사라질 수 있도록, 갈빗대 사이로 정확히 심장을 노려야 한다. 듣기로 사신의 자기소멸은 불가능하다던데, 그가 소멸한다면 아마 특수한 상황이 되겠지. 에단은 손잡이를 틀어쥔 손이 신을 비웃으며 내려꽂히는 순간을 천천히 응시한다. 그처럼 자기 몸을 바라보는 일도 마지막 순간의 도피인지 모른다.
“모두가 너를 구할 줄은 몰랐겠지.” 사감이 옆에서 말을 건다. 이는 맞는 말이다. 어느 정도 빚을 졌다 할 수 있겠지. 에단은 그가 무엇을 상상했는지 떠올린다. 행복했던 순간을?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누군가 그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모든 것을 이루고 나니 무릎은 쉽게 꺾여 아무 곳에든지 엎어지려 했다. 땅에 부딪히는 충격 대신에 그는 심장을 꽉 누르는 압박을 느낀다. 아마도 에단이 무언가 소리를 냈다면 헐떡이는 게 고작이었을 터다. 심장에 칼이 꽂혔을 때 유언을 남기는 사치는 대단히 어려운 탓이다. 루이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을 정하라 해도…
만약 매니저나 주군에게라면 에단은 죄송하다고 했을지 모른다. 그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들을 최후까지 지키는 건 그저 불가능하다고 인정할 때도 오는 것이다. 죽기 직전에 오기를 부리는 건 멍청한 짓이므로. 그러나 루이에게는 어떤 변명도 필요 없음을 알았다. 루이라면… 그래, 이해할 것이다. 희미한 생화 향이 난다. 그의 룸메이트는 한 손으로 가슴을 누른 채 쉬이… 하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말 그대로 죽을만치 아팠기 때문에 에단은 그만 내버려 두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 심장은 마지막으로 얼마간의 피를 펌프질할 요량으로 힘껏 뛰고, 죽음의 신은 더이상 에단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소중한 왕자를 못 지켰다는 싸구려 도발도 싫증이 나던 차였다. 대단히 지쳐 보이지만 왕자는 거기 살아 있으니까. 그는 바다 한가운데 던져 놔도 오로지 에단을 열받게 하기 위해 헤엄쳐 올 수 있을 것 같다.
루이가 속삭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것에 귀를 기울이면 대체로, 그대, 내가 왔어, 다 괜찮을 거야…, 따위의 내용이다. 그는 정말로 뭔가를 막아 보려는 것처럼 보여서 에단은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그 때쯤에 에단은 정말로 이 두 번째 죽음이 무섭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
루이는 힘겹게 숨을 토하고 에단이 있는 곳으로 돌아눕는다. 그곳에는 개어진 이불 대신 진짜 룸메이트가 있어서 낯설게 느껴졌다. 루이는 어떻게든 에단을 안심시키려던 순간을 떠올린다. 상처를 누른 채 무슨 말이든 주워섬겨서, 거기에 붙잡아 두려던 것을.
나는 이해하네. 에단은 임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매니저는 고개를 저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못 하겠어.” 루이는 그런 대답이 돌아올 줄을 알고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연극이다. 사람은 강하게 믿는다면 얼마든지 자기가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께를 바라본다. 에단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죽음조차 결연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얼마나 숭고한가. 그러니 루이도 의연하게 자기 삶을 살아내야 할 터다.
너, 소름끼치게 쳐다보지 말고 자라. 에단이 문득 입을 열었다. 루이는 놀라 소스라칠 뻔한 것을 참고 고개를 끄덕인다. 한참 뒤에야 끄덕이는 게 보이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에 미치지만 방 안엔 다시 침묵이 깔린 뒤였다. 지키고 싶은 누군가를 생각하며, 자신만은 희생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숨이 떠나가는 순간을 마주하고 나면, 스스로의 비명까지도 지나치게 생생하게 떠올랐다. 마치 타인이 그의 귀 옆에서 소리치는 듯이. 에단! 하고. 그 소리는 정말로 공포에 질린 것처럼 느껴졌다. 도저히 에단이 스스로의 심장에 검을 찔렀다는 걸 인정할 수 없는 사람처럼. 자신과 모든 낮조 사신들을 앞에 두고 그럴 수는 없다고.
루이는 그 배신까지는 이해할 수 없음을 안다. 이를 배신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게 진짜라고 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
에단에게 이 수백 년, 어쩌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는 삶은 단지 여기서 저기까지 가는 과정일 뿐이다. (우리는 기억조차 하지 못할 거야.) 거기에 어떤 진심이 있을 수도 있다. 표현할 만한 존경심. 혹은 업무상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영원할 약속이나 다신 잃고 싶지 않은 관계가 사신 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에단은 자는 체하면서 그를 확인하는 룸메이트의 시선을 느낀다. 언젠가 들은 말도 맴돌았다. “그대가 없으니 방이 텅 빈 것 같아.” 그것 안되었군. 내가 먼저 염원을 이루면 그 방은 쭉 텅 빌 테니 말이야. 에단은 그런 말까진 하지 않았다.
그를 따라잡을 이는 많지 않으니 아마도 자신은 가장 먼저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대체로 부당한 일들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차피 그들은 진짜 동료도 무엇도 되지 못할 것이다. 한심한 근성은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한심한 대로 내버려 둬도 그만이다. 그러니 그는 정말로 자멸에 대한 욕구가 있다 할 수도 있겠다. 이 사신 일이 가능하면 빨리 끝나 에단이 본래 살아야 했을 삶으로 돌아가길 바라므로. 그게 ‘진짜’ 삶이고, 에단은 집과 동료가 있는 사람이다. 비록 모든 것이 없어지더라도, 에단에게는 돌아가야 할 곳이 분명했다.
“그러니 앞으로 임무에 지장이 없는 건 확실하지.”
사감은 펜을 닫더니 앞으로는 동료와의 연계에도 신경쓰도록… 따위의 하나마나한 말을 건네는 대신 ‘자신의 목숨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아.’ 하고, 그를 보내 주었다.
♣♣♣
에단이 뒤돌아있는 동안 뒤에서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한동안 들리더니, 곧 인기척이 느껴졌다. 에단은 재차 돌아가서 자라고 해야 할 지, 아니면 그가 하는대로 내버려 둬야 할 지 고민한다. 루이는 그의 병상에서 곧잘 하던 것처럼 매트리스에 머리를 기대 왔다.
그의 앞에서 죽을 뻔했다고 갑작스레 친해질 수는 없지만 그 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만일 자신이 마지막으로 들은 것이 그의 흐느낌이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하는 건 무의미하다. 안타깝게도 그는 많은 일을 기억했고 그 중에 하나는 두 번째 죽음이 될 뻔한 순간이다. 황금 사자를 보기 전에, 루이가 차가운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일을 기억한다. 아아… 에단, 괜찮아, 여기 있어… 그 목소리가 호흡과 호흡 사이로 엉망으로 떨리던 일을. 그가 기댄 루이의 몸에서는 심박이 터질 것처럼 전해지고, 에단은 그의 전신이 점차 차가워지면서 동시에 루이를 따라 흔들림을 느낀다.
그 때 느꼈던 평안함은 어땠는지. 이제 그는 살아있는데도 에단은 어딘가 석연치 않다. 루이는 이따금 다행이라는 말도 부족한 것처럼 애통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차라리 분노하는 게 나을 텐데. 정말로 자신은 그 때 한 번 죽어서, 루이를 바라보는 자신은 다른 사람―다른 알맹이가 된지도 모른다.
에단은 루이를 향해 돌아누워 몸을 천천히 뒤로 뺐다. 루이는 어둠 속에서 당황스레 눈을 굴리고 에단도 굳이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불편한 침묵이 흐르고 나서야 에단은 매트리스가 한쪽으로 꺼지는 걸 느낀다. 누구와도 그렇게 가까이 누워본 일이 없는데, 어차피 루이가 무슨 짓을 할 위인도 아니지. 이제는 정말 신경쓰지 않겠다 마음먹고 에단은 눈을 감았다. 루이가 있는 데서 무게감이나 열이 끼쳐 왔다. 그들은 서로 닿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다.
♣♣♣
내 감옥에 그대가 있다면 그렇게 무섭진 않았을 거야. 루이는 손가락으로 이불을 더듬으며 생각한다. 그렇지만 희생은 홀로 하는 것일진대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고 하면 우습겠지. 내가 어떤 기사를 영영 가질 수는 없는 것처럼. 그러니 나는 궁전 안에서 몇 번이고 혼자 살아남아야 해… 이제 와서 새삼스레, 루이는 데몬만큼이나 혼자임을 안다. 그런데도 자신은 죽음의 신에게 외로워하지 말라고 했지. 왕자는 에단의 감은 눈에서부터 흉진 심장까지를 따라가다가 이만 잠들기로 한다.
♣♣♣
이제 와서 한 가지 두려운 일이 생긴다면 어쩔 텐가. 에단은 안정적으로 뛰는 심장 소리를 셌다. 문고리를 잡은 루이 그레이스가 또 말한다. 어서 오게, 에단. 그 말을 들으면 돌아올 곳으로 돌아온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죽음과 불신으로부터 루이를 지키는 체하는 건 유치한 역할놀이였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그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은, 죽기조차 망설이게 될 것 같다는 점이 기묘했다. 고작 꼴불견인 룸메이트인데도.
어쩌면 그가 에단이 찾을 수 있는 가장 왕자에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실은 전능한 신이나 어떤 왕족도 사신 지부에는 없음을 안다. 루이를 주군으로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대의 주군은 마음이 많이 아플 것이야. 말하자면 루이가 그런 식으로 돌려 말할 때에 비치는 내색을 에단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두려움은 그를 돌아갈 곳 잃은 겁쟁이로 만드는가? 아니면 살아 있는 사신으로 만드는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본래 만화로 그리려고 했던 것인데 최근 그림 그리기가 귀찮아져서… 약간 글콘티같아졌지만? 아무튼 끝냈으니 만족입니다.(^^)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인루이] Hated Because of Great Qualities (0) | 2020.01.20 |
---|---|
[에단루이] 천사의 딜레마 5(完) + 후기 (0) | 2020.01.05 |
[에단루이] 천사의 딜레마 4 (0) | 2020.01.03 |
[에단루이] 천사의 딜레마 3 (0) | 2019.12.30 |
[에단루이] 천사의 딜레마 2 (0) | 2019.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