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소재 주의.
에단은 루이가 이제 얼마 못 갈 거라는 말을 듣는다. 누운지 꼬박 열흘 하고 삼 일만이다. 감정이 풍부한 매니저는 더 앉아 있기가 힘든지 축축한 눈으로 문을 나섰고 에단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앉아 있었다. 여태 루이와 계속 있어준 것도 매니저였다. 잠시 그녀에게 정리할 시간을 주면 누구보다 꼿꼿한 마음으로 돌아올 터였다. 한 번도 젖은 것 없는 것처럼.
에단은 애초에 젖을 이유도 없다. 이백 년이 넘게 방을 같이 써도 계랑할 수 있는 수치만큼 사이가 진전되지는 않는다. 간병은 마땅한 의무이므로 수행하지만, 루이가 없어져도 그것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며칠간 열이 없더니 잠깐 안 본 사이 이마에 온통 땀이 맺혔다. 에단은 파리한 얼굴을 내려다본다. 특별히 모나진 않고 그렇다고 자기 말대로 빛나지도 않는다. 루이는 조금 굶는 정도야 해본 적 있다고 정신나간 듯 웃었는데 그렇게 총체적으로 멍청할 수가 없다. 물수건으로 닦으니 루이가 아기동물처럼 끙끙댔다.
그대는 유니콘이 무언지 아나?
귀를 바짝 세운 의미가 없는 질문이었다. 에단은 열에 끓는 헛소리로 치부하고 무시하려다가 알지, 답했다. 유니콘이 있다면 도와줄지도 몰라. 그대에게만 말하겠네. 왕자는 해괴한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어 침묵이 흘렀다. 에단은 물수건을 물에 적신다. 웬 근거없는 소리인지 처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루이를 낫게 할 방법을 그동안 수없이 찾았지만 유니콘은 처음 듣는다. 언젠가 어릴 적에 듣고는 아주 잊어버린 존재다. 에단은 믿은 적도 없었을 것이다.
다시 돌아온 매니저에게 유니콘에 대해 물어 보니 알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아마 쓸모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누구도 할 수 없었는데 그저 앓아누워 있기만 한 루이 그레이스가 무얼 안단 말인가. 아무 말이나 해서 상황을 어딘지 낭만적으로 만들 속셈일 테다.
복도 공기는 폐까지 차갑게 들이찼다. 환자 근처의 덥고 습한 그것과는 달랐다. 에단은 방향 없이 걷는다.
이백 년간 그들은 무얼 했나? 에단이 말할 수 있는 건 저 정도로 멍청한 왕을 감당할 수 있는 나라는 아마 훌륭한 기반과 체계가 갖춰져 있겠다는 정도였다.(실제 꼴이 어떤지는 루이와 직접 봤지만) 장미나 뿌려 대는 자아도취증 환자. 본인을 찬미할 때까지 방문을 잠그고 나가지 못하게 한 적도 있었다. 껄껄대는 웃음하며. 그가 깨어 있는지 짐작하도록, 언제쯤 웃음소리가 들릴지 기다린 적도 있다. 그런 일도 이젠 없겠지만. 에단은 검 손잡이를 버릇처럼 만지작거린다. 루이의 헛소리가 떠돌았다. 유니콘 같은 건 존재하지 않고 찾으러 갈 생각 없다. 이 추잡하게 서서히 죽어가는 어디서 난데없이 유니콘 같은 게 튀어나온 건가? 푹신푹신하고 무지갯빛으로 빛나고 순수하고 환상적인 동물이 세상에 더러운 것은 없다 약속하는 게, 꼭 저 같은 것만 찾고 있다.
그 다음 순간에 에단은 유니콘을 찾는 여정 중간에 놓였다. 그건 그가 완전히 뜻한 바는 아니다. 어쩌면 멍청한 헛바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조금도 성공할 기미가 없는 일에 뛰어드는 게 에단이 평소에 하는 일은 아니었다. 에단은 어떤 변명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니까 이건 죽어가는 룸메이트 옆에 있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가 아니다. 그곳에 있으면 실제로 미안하지 않은 일을 끝도 없이 사과하게 될 지도 몰랐다. 어쩌면 사랑한다고 말하게 될지도 몰랐다. 숨이 막히고 뒷목이 서늘했다. 매니저의 음성으로라면 쉽게 상상이 갔다. 그녀는 그들에게 어떤 인간성의 본보기나 다름없었으므로. 그래서 그녀의 목소리가 몇 번이고 울렸다. 미안해 루이, 사랑해. 정말 미안해.
그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에단은 유니콘을 찾기로 했다.
그리고 에단은 정말로 해냈다! 산을 넘고 절벽을 오르고 세계 밑으로 꺼지나 싶더니 정말로 유니콘이 머문다는 연못이 나왔다. 루이라면 칭찬받기 위해 으스댔겠지만 에단은 혼자였으므로 묵묵히 온통 뒤집어쓴 먼지며 알 수 없는 구정물을 털어냈다. 연못은 아치 같은 숲에 둘러싸여 어두운 가운데 무성한 풀잎은 연녹색이고 그 위로 에단이 뚝뚝 흘리는 피 같은 오물이 타고흘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마다 에단은 흠칫했지만 그저 산새나 청설모였을 따름이다.
쉼 없이 재촉한 긴 여정이었다. 그렇지만 그게 다다. 루이는 이제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속이 울렁거리면서 어딘지 편하기도 했다. 문득 산란하는 무지갯빛이 떨어뜨린 손에 고였다. 에단은 눈을 들어 유니콘과 눈을 마주쳤다. 하얗고 우아한 뿔이 에단을 향해 갸웃했다.
안녕하세요, 저요? 유니콘 맞는데요. 와, 사신이시군요. 그렇죠. 그럼요. 인간 본 지가 몇백년만이네요. 다들 어떻게, 잘 지내나요? 동료를 위해 제가 필요해요? 누가 그런 말을 하나요? 그런데요. 저기, ...에단 님. 그런데 저희 유니콘들은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라서요. 죽어가는 사람은 못 살려요. 아니, 감기도 못 고쳐요. 저는 여기에 그냥 빨래하러 온 거라서요. 진짜예요. 주기적으로 옷감을 세탁해야 하거든요. 신비나 마법, 아니면 기적에 대해서는 오히려 당신이 더 잘 알지 않을까요? 에단 님. 기껏 찾아오셨는데 죄송해요.
유니콘은 긴 속눈썹을 우울하게 파르르 떨더니 고개를 저었다. 에단은 팔을 떨어뜨리고 요동 없는 연못 표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그랬지. 그랬어. 루이가 제대로 된 근거있는 말을 할 리가 없지. 그런데도 나는……
이거라도 가지실래요. 제 무지개 조각이예요. 유니콘이 옆에서 말을 걸었다. 에단은 보석과도 비슷한 조각을 받아들고 유니콘에게 감사를 표했다. 쓰다듬으니 유니콘이 눈을 세차게 깜박였다. 동료분 일은 정말 안됐어요. 슬프시겠어요. 이런 일만 아니라면 에단 님은 참 좋은 사람인데요. 유니콘들은 뭔가 참고 있는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그런 게 소위 순결함이지요. 유니콘은 웃는 것처럼 갈기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에단이 돌아올 때까지 루이는 용케 살아 있었다. 에단은 달리 할 말이 없어 무지개 조각을 건네고 유니콘을 봤다고 했다. 루이는 웃으려는듯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흔들리는 눈이 아름답군.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젠 어쩔 수 없다. 어찌어찌 피하려 노력했음에도 헤어지는 말들을 해야 했다. 에단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고 루이가 덮은 포근한 이불 끝을 더듬었다. 그건 진짜 유니콘 등과 감촉이 비슷했다.
“에단.”
“그래.”
유니콘은 어떻던가? 에단은 느리게 눈을 들어 답하려고 했다. 루이는 벌써 오래 전에 잠든 것처럼 조용했다. 암막커튼 사이로 빛이 비쳐서 유니콘의 무지개조각이 루이의 얼굴 한쪽에 작고 찬란한 무지개를 만드는 것을 에단은 보았다. 잃어버린 사랑한다는 말들이 휘청이면서 떠도는 수많은 꿈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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